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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session 10

아지크롤아지 가브크롤

가브리엘은 며칠이 지나도록 크롤리의 감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크롤리는 분명히 며칠이 지났을 거라 확신했다. 영원과도 같은 며칠이었다. 얼굴 전체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성수는 뜨겁게 입안의 살을 파고들어가며 혀를 태우고 있었다. 물방울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자 전신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집중할 수도 없었다. 대천사가 감방에 들어올 때, 크롤리는 가브리엘의 무거운 발소리만을 어렴풋하게 들을 수 있었다.

 

 

“오, 크롤리...” 가브리엘은 이 사이로 숨을 들이쉬며, 동정이라도 하듯 작게 소리를 냈다. “정말 아파 보이는구나.”

 

 

대천사는 매우 가까이 크롤리의 앞으로 다가왔고, 악마는 자신의 맨살에 스치는 매우 비싼 양복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브리엘의 손이 크롤리의 뒤통수에 얹히는가 싶더니, 손가락이 악마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는 달갑지 않은 접촉에 머리를 홱 빼냈다. 가브리엘은 크롤리 머리 뒤쪽에 있는, 재갈을 묶어놓은 매듭을 움켜쥐는 걸로 보복했다. 그는 매듭을 비틀며 크롤리의 머리를 뒤로 젖혔고, 낮고 분노에 차서 으르렁거렸다.

 

 

“아닌가보구나. 내가 착각했나보군. 좀 더 이 상태로 있고 싶다, 이건가?”

 

 

그 생각에 크롤리는 가슴이 철렁하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너무 심한 고통으로 거의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그는 고통을 숨길 시도도 하지 못했다. 크롤리는 가브리엘의 억센 손아귀에 잡힌 채 할 수 있는 한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시발 나랑 싸우지 마라!”

 

 

가브리엘이 손을 좀 더 비틀자, 천이 크롤리의 입 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오며 화상을 악화시켰다. 반사적으로 목을 삼키자 더 많은 성수가 크롤리의 목 안으로 흘러들어왔고, 새롭게 느껴지는 고통이 전신을 관통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 끄덕였다. 재갈을 없애야 했다. 그 다음에 어떤 고문을 받든, 그건 그때 걱정할 일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걸 빼내야 했다.

 

 

“알았다고?”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고, 살짝 놀란 것처럼 들렸다. 크롤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은 매듭을 놓더니,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크롤리의 머리카락을 다시 쓸었다. 크롤리는 몸을 빼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와서, 손으로 크롤리의 드러난 엉덩이를 쓸기까지 했음에도.

 

 

“좋아.” 가브리엘은 차분히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훨씬 낫군. 이제, 이걸 빼내준다면... 계속 나한테 욕설을 퍼부을 거냐? 아니면, 이제 예의를 갖출 준비가 된 건가?”

 

 

크롤리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자 가브리엘이 웃었다.

“좋아.” 대천사는 크롤리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착하기도 해라.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줄 건가? 내가 듣고 싶은 걸 말해주겠지?”

 

 

크롤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완전히 지쳐 고개를 앞으로 늘어뜨렸다.

 

 

그는 가브리엘에게 그 어떤 것도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가브리엘이 아지라파엘에게 손을 뻗쳐 천사를 고문하고 죽이느니, 자신이 영원히 가브리엘에게 고문당하는 편이 나았다. 그는 가브리엘이 재갈을 빼낼 마음이 들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일 뿐이라도 좋았다. 쉴 시간을 벌어야 했다.

 

 

잠깐만 쉬면 돼... 계속 해, 계속 싸우는 거야. 그냥 조금 쉴 수만 있다면...

 

 

“좋아.” 가브리엘은 기쁨에 차서, 승리감을 느끼며 말을 반복했다.

 

 

머리 뒤쪽의 매듭을 풀어주는 대천사의 손길은 평소답지 않게 조심스러웠다. 그는 천천히 크롤리의 입에서 재갈을 빼내줬고, 피투성이가 된 채 검게 변한 천뭉치를 본 가브리엘의 표정이 혐오로 일그러졌다. 천뭉치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가브리엘이 손을 튕기자 크롤리의 손목을 묶고 있던 사슬이 풀렸고, 크롤리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과 부딪힐 때 느껴진 날카로운 충격은, 고통스럽게 늘어져있던 사지에 찾아온 편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악마 앞에 쭈그려 앉았다. 가브리엘의 손이 크롤리의 턱을 그러쥐더니, 심한 화상을 입은 얼굴을 자신 쪽으로 들어 올렸다. 크롤리는 놀란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며, 작고도 목메인 비명을 질렀다.

 

 

“지금이다.” 가브리엘의 목소리는 낮고도 위협적이었다.

“말할 게 있을 텐데?”

 

 

크롤리는 떨리는 숨을 느리게 들이마셨다. 그는 심하게 상한 입안을 진정시키려고 침을 삼키며 몸을 움찔거렸다. 가브리엘이 매우 빠르게 짜증을 낸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하려고 온힘을 다했으나, 엉망이 된 입술과 혀는 어떤 제대로 된 단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브리엘은 놀랍게도 동정심을 느끼는 듯 약간 입가를 찌푸렸다.

 

 

“그래, 말이 잘 안 나오지? 자, 도와주마...”

 

가브리엘은 크롤리의 턱을 놓아주고는, 얼굴을 건드리지 않으며 바로 위에 손만 훑었다. 따뜻한 열기가 크롤리의 입술을 지나 목 안쪽까지 퍼졌다. 그러자마자 고통은 완전히 사라졌고, 화상도 완전히 치유되었다.

 

 

“다 됐다, 이제 낫군.” 가브리엘의 격려 하는듯한 어조는 거의 친근하게 들렸다.

“계속 해라, 크롤리. 너와 아지라파엘에 대해서 말해. 진실만을 고해라.”

꾸며낸 슬픈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천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건 모두 끝날 거다.”

 

 

크롤리는 천천히 목을 삼키며, 눈을 감고 아무 고통도 없는 이 순간을 음미했다. 곧 없어질 짧은 순간이었다. 곧 가브리엘이 이 모든 걸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마구 뛰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또 다시 성수로 된 재갈이 아니라면, 더 나쁜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뭐가 됐던 간에, 자신은 아지라파엘을 배신할 수 없었다.

 

 

아마 최상의 선택은, 대천사가 자제력을 완전히 잃도록 밀어붙여 자신을 아예 끝장내도록 하는 것이리라.

 

 

이런 일을 계속 겪느니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

 

 

크롤리는 한 팔로 가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고, 무릎을 꿇으며 천천히,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브리엘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서, 부드럽게 소리를 낮춰 물었다. “뭐라고?”

 

 

크롤리는 깊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차갑고 도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가브리엘을 올려다봤다. “엿 먹으라고 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가브리엘은 충격을 받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크롤리는 몸을 숙여 대천사의 얼굴에 독을 뱉어버렸다. 가브리엘은 분노와 고통에 찬 소리를 질렀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몸을 돌렸다 – 동시에 크롤리의 목에 있던 칼라가 사납게 불타올랐고, 그는 괴로움에 휩싸인 채 쓰러져버렸다. 머리에서 시작된 격렬한 타오르는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고, 크롤리는 얼굴로 날아오는 가브리엘의 발길질도 거의 느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지나가자, 그는 잇새로 혀를 내밀어 피를 핥으면서 가브리엘을 향해 히죽거렸다.

 

 

“꼴좋다(worth it)”, 악마는 반항의 만족감을 느끼며 대천사를 향해 쉭쉭거렸다.

 

 

가브리엘은 격노했고, 주먹을 들어 올려 크롤리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 그 후 악마의 머리칼을 쥐고 무릎이 들릴 때까지 일으켜 세우더니, 그의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매우 가깝게 다가왔다. 어찌나 가깝던지 크롤리는 자신의 얼굴에 닿는 대천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크롤리는 눈을 감으며, 가브리엘의 잔인한 웃음이 의미하는, 곧 닥쳐올 처벌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 가브리엘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칼라에 닿는 가브리엘의 손이 느껴지자 크롤리의 뱃속이 뒤틀렸고, 다이얼이 점점 높아지면서 괴로움은 급격하게 커져갔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자신하지 마라, 악마 놈아. 다음부터는 네놈은 날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다. 쳐다보기는커녕...”

 

 

가브리엘의 격노와 불신에 찬 말들은 엄청난 고통 때문에 점점 들리지 않았다. 크롤리는 매우 천천히 가브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완전해진 금빛의 뱀눈으로 대천사를 노려봤다. 칼라에서는 크롤리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압도적인 고통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픔에 맞서 싸우며 반항적으로 대천사의 눈을 마주보았으며, 떨리는 입술과 거의 숨도 쉴 수도 없는 폐를 이용해 말을 뱉어내려고 온힘을 다했다.

 

 

“F-f...” 너무나 격렬하고 압도적인 고통 때문에 욕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알아들었다.

 

 

잠깐 동안, 크롤리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의 보라색 눈이 형형하게 빛났고, 입술은 복수심으로 비틀렸으며, 크롤리를 향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던 것이다. 크롤리는 죽을 준비를 했다. 적어도 고통은 이제 끝날 것이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천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증거를 절대 얻지 못할 것이다.

 

 

아지라파엘만큼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본인의 분노를 눈에 띌 정도로 힘겹게 억누르면서, 가브리엘은 주먹을 꽉 쥐더니 손을 천천히 내렸다. 대천사는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내뱉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 –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은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브리엘이 칼라를 향해 다시 손을 뻗자 크롤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대천사는 평상시처럼 단계를 중간으로 낮춰줄 뿐이었다.

 

 

크롤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숨을 골랐고, 당황스러워하며 가브리엘을 바라봤다. 가브리엘은 미소를 지었고, 즐거워하며 고개를 젓더니 수트 재킷의 안쪽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손수건으로 얼굴에 남아있던 크롤리의 독을 닦아냈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감방을 떠났다.

 

 

다시 감방 문이 열리기까지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문이 열리며 두 천사가 들어왔다. 아무 설명도 없이, 크롤리의 반항은 무시한 채, 천사들은 그의 팔을 잡고는 음침한 복도를 따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크롤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방이었다. 자신의 감방은 더러운 회색 돌뿐이었다. 이 방은 대부분이 타일과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 있었고, 깨끗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방의 한구석에는 의료 기구로 보이는 다양한 도구들이 놓인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옆에는 좁고, 금속으로 된 진찰대가 있었다. 진찰대 위에는 딱 맞는 얇은 매트리스가 있었고 모든 모서리마다 온갖 종류의 구속 장치가 달려있었다.

 

 

가브리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테이블 앞쪽에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오, 젠장, 안 돼...

 

 

그들이 정확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 순 없었으나, 이미 겪었던 것보다 더 심한 일이 생길 거란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크롤리는 양옆 천사들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다. 한 천사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순간, 칼라의 처벌이 숨을 앗아갔고 크롤리는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정신이 들면서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목과 발목은 이미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 천사는 크롤리가 머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이마 주위에 가죽끈을 단단히 조이고 있었고, 다른 천사는 옆의 작은 금속 테이블에서 도구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풀어줘!” 크롤리는 소리를 지르며, 결박을 풀려고 몸에 힘을 줬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거 놔, 그만해...”

 

 

한 천사가 테이블에서 몸을 돌렸고, 그는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아이드로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크롤리는 완전히 공포로 얼어붙었으며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크롤리는 저항하려고 했으나, 천사가 조심스럽게 아이드로퍼를 가브리엘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보자 말은 고사하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은 차분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크롤리를 내려다봤다. 대천사는 무덤덤하게 알려줬다.
“이번엔 희석되지 않았다. 완전히 순수한 성수지.”

 

 

크롤리는 공포에 질려서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썼다. 가브리엘이 손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 순식간에 크롤리의 눈이 다시 떠졌고, 아무리 용을 써도 눈을 다시 감을 수가 없었다.

 

 

“제발!” 가브리엘이 아이드로퍼를 얼굴에 가져다댔고, 작은 물방울이 끝에 생기기 시작하자 크롤리는 목멘 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악마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으나, 그는 완전하고도 순수한 공포에 휩싸여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마, 제발!”

 

 

가브리엘의 자유로운 한쪽 손이 크롤리의 뺨을 감쌌다. 대천사의 표정은 꾸며낸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말했지 않나.” 그는 참을성 있게 말해줬다. “다음에는... 네놈은 날 쳐다보지도 못할 거라고.”

 

 

“그만... 안 돼!” 크롤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다.

 

 

크롤리의 완전히 떠진 연약한 눈에 첫 번째 방울이 떨어졌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온몸이 타오르는 격렬한 고통이 폭발했다. 자신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몸이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쪽 눈에 두 번째 방울이 떨어졌다. 그러자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크롤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무의식의 자비로움이 악마를 끌어내렸고,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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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침실에서 홀로 깨어났다. 창문 너머로 부드럽게 빛나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따뜻하고 편안했으며, 모든 게 고요하고 조용했다 –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후 빛을 향해 눈을 깜빡였고, 침실 문 바로 뒤쪽에서 아지라파엘이 부엌에서 내는 희미한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

 

 

크롤리는 앉은 채 침대가로 다가갔고, 아지라파엘이 스탠드에 올려둔 선글라스로 얼른 손을 뻗었다. 선글라스를 쓰자마자 전날 밤의 기억들이 – 자신을 쓰다듬던 아지라파엘의 부드러운 손과, 자신의 목에 닿던 아지라파엘의 입술이 – 떠올랐다.

그 후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 사실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마 안가 자신은 잠에 빠진 게 분명했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잠에서 깼던 기억이 났다 – 울면서, 겁에 질린 채, 좌절감을 느끼며, 간절하게 애처럼 천사에게 매달렸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한심한 쓰레기야? 내면의 목소리가 심술궂게 물었다. 넌 악마야, 망할 어둠을 두려워하다니!

 

 

크롤리는 눈을 감고 몇 번 심호흡을 하며, 얼굴의 화끈거림을 좀 없애면서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대신 위안을 주는 작은 것들에 마음을 집중했다 – 신선한 커피의 매력적인 향기와... 아침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게 분명한, 아지라파엘이 기쁘게 움직이는 소리와... 얼굴에 닿는 햇살의 기분 좋은 온기 같은 것들에.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크롤리는 일어서서 문으로 다가갔다. 문이 닫혀 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침대가로 돌아와 가방에서 새 셔츠와 바지를 꺼냈다. 그는 잠옷 바지를 깨끗한 바지로 갈아입었고, 부드러운 검은 티셔츠를 벗은 후 어두운 녹색 버튼다운 셔츠를 집어 들었다.

 

 

크롤리는 한동안 거울 앞에 서서 아직 남아있는 약간의 상처들을 눈여겨봤다. 날개에 있는 대부분의 상처들은 잘 낫고 있었다. 거의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관절에 박힌 고리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고리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크롤리의 날개는 좀 더 건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불안해하며, 복부며 옆구리며 등을 온통 덮고 있는 작은 자상들과 화상들로 시선을 옮겼다. 날개와 마찬가지로, 그 상처들도 훨씬 상태가 나아보였다. 치료는 필요 없어 보였다.

 

 

상반신을 덮고 있는 수많은 흉터들을 보자 크롤리는 입안이 약간 건조해졌고,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그는 흉터들을 무시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것들은 하얗고, 다양한 모양과 크기와 패턴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악마에게 실제로 흉터를 남길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가브리엘이 그 하나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사용하는 데 큰 즐거움을 느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크롤리는 망설이며 거울 앞에서 돌아서서, 엉망이 된 피부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하나의 흉터를 어깨 너머로 쳐다봤다. 척추 아래쪽에 새겨진, 작고도 복잡한 에노치어(Enochian) 문양이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눈물 때문에 눈이 뜨거워졌다.

 

 

이제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이것의 의미도... 네놈의 주제도...

 

 

크롤리는 욕지기가 드는 걸 애써 참으면서 몸을 떨었고, 재빨리 셔츠를 입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단추를 채웠다. 옷을 입는데 몇 분이나 걸렸다 – 손만 한 번 튕겨서 사소한 기적을 쓰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다... 하루를 완전히 지친 채로 시작하고 싶지 않는다면 말이다.

 

 

준비가 되자, 크롤리는 침실 문 앞에서 잠깐 망설이더니,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로부터 등을 돌린 채 서 있었고, 스토브에서 뭔가를 바쁘게 휘젓고 있느라 친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지라파엘은 요리를 정말 잘했다. 천사는 음식을 즐겼으며, 자신이 음식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천사는 음식을 음미할 줄 알았다. 지난 14년 간, 그는 크롤리와도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사실 크롤리는 딱히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를 치유하고 도와주길 원했다. 선택지가 제한된 이 상황에서, 식사대접 만큼은 천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래서 천사는 성실하게, 사랑을 듬뿍 담아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을 바라보다가, 크롤리는 갑자기 엄청난 애정과 감사함을 느꼈고,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지라파엘 뒤쪽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조금 망설이더니 천사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아지라파엘의 목에 얼굴을 얹었다. 아지라파엘은 잠깐 굳는가 싶더니, 곧이어 크롤리의 얼굴에 손을 얹고 고개를 돌려 그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아지라파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지 생각하자 크롤리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미안해.”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목에 대고 말했다.

 

 

그러지 마.” 아지라파엘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날카로웠다. 천사는 힘을 줘서 스토브를 끄고, 크롤리의 품안에서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봤다. “얘야, 나 좀 봐.”

 

 

크롤리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진짜 눈은 천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을 마주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의 손이 조심스럽게 선글라스를 벗겨냈고, 크롤리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요동쳤다.

 

 

“보고 있잖아.” 악마가 약하게 저항했다. “보고 있다고.”

아지라파엘이 스토브 옆 조리대에 선글라스를 올려놨고, 크롤리의 시선이 불안하게 자신의 선글라스를 따라 움직였다. 천사는 양손으로 크롤리의 얼굴을 감쌌다.

 

 

천사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말을 들을 때까지 천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크롤리는 마지못해 시선을 올려 아지라파엘의 눈을 바라봤다 – 숨이 막힐 정도로 진심이 어려 있었고, 격렬한 보호가 담겨있었다.

 

 

“네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 미안해하는 건 그만둬.” 아지라파엘은 엄격하지만 부드럽게 명령하듯 말했다.

“넌 잘못한 거 없어, 크롤리. 그런 일을 당할 이유도, 미안해 할 이유도 전혀 없어.”

 

 

크롤리는 자신 등에 새겨진 죄악의 표식이 떠올랐고, 그는 시선을 돌리며 힘들게 목을 삼켰다.

 

 

“그들은 널... 음, 얼마나 길었는지 신만이 아시겠지만, 오랫동안 고문했어. 하지만 넌 굴복하지 않았지.”

 

 

크롤리는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찡그렸고,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넌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았어.” 아지라파엘이 명확하게 말했다.

“항복하지 않았잖아. 너의 강인함과 용기는 경이로워, 크롤리. 겪었던 일에 대해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던 간에... 얘야, 부끄러움만큼은 느끼면 안 돼.”

 

 

아지라파엘의 손은 여전히 크롤리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천사는 약간 발을 들어 올려 달콤하고 따뜻하게 키스를 했다. 자신이 아지라파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크롤리는 천사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지라파엘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토록 갈망해오던 키스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그들이 입술을 뗐을 때,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눈을 올려다봤으며 크롤리는 마지못해 시선을 마주봤다.

 

 

사랑해.”

 

 

아지라파엘의 말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천사가 맹세를 지킬 것임을 크롤리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크롤리는 같은 말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당연히 자신 또한 같은 감정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는 아지라파엘만큼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난 14년간, 크롤리는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해왔다. 문제는, 지금 같은 말을 되돌려주지 못한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목이 욱신거리고, 눈물로 눈이 화끈거렸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에서 벗어나 무력하게 고개를 다시 숙였고, 아지라파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지라파엘은 두 팔로 크롤리를 감싸 안더니 자신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한 팔은 그의 허리에, 한 팔은 목에 두른 채, 천사는 엄지로 부드럽게 친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사랑하는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크롤리의 귀에 대고 말했다. “만약 – 만약에... 거기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은 거라면...”

 

 

“그러지 마.” 크롤리는 고개를 저으며, 쉰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내뱉었다.

“제발 그러지 마...”

 

 

아지라파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크롤리의 관자놀이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아침식사가 차가워지는 동안, 천사는 그저 말없이 악마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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