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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session 9

아지크롤아지 가브크롤

지난 14년간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크롤리의 플랫에서보다 아지라파엘의 집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지라파엘의 집이 더 편안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지도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자신의 편보다 크롤리의 편에게 잡히는 쪽을 훨씬 걱정했던 것이다.




“악마들이란 원래 잔인하고 난폭하잖아.” 자신은 배운 그대로를 사실인 마냥 크롤리에게 읊어줬었다.



“오, 그러셔?”




크롤리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입을 살짝 굳게 다물었다. 아지라파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천사의 말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워하며, 겸연쩍게 아지라파엘은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철회라기 보단 수정이었다.



“너말고, 크롤리. 그들 말이야.” 천사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천국 측에서 우릴 붙잡는다면, 유쾌하진 않겠지. 그래도 네가 지옥의 심판을 받는 것보다야 내가 천국의 심판을 받는 쪽이 훨씬 나을 거야.”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틀려도 한참 틀렸던 것이다.




생각한 것마다 맞는 게 없군, 안 그래?




아지라파엘은 눈을 깜빡여서 분노로 차오르는 눈물을 털어냈다. 천사는 옷장 뒤에서 찾은 검은색의 작은 가방 안에 크롤리가 가장 좋아하는 셔츠와 바지 몇 벌을 넣고, 필요한 힘 이상으로 옷장을 세게 닫았다. 다음은 잠옷이 든 서랍을 열어 화려한 실크 파자마 두 벌을 꺼냈다.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찾고자 서랍 뒤쪽으로 손을 더 뻗어봤다. 더 편안한 옷을 찾고 싶었다. 밋밋한 검은 티셔츠 한 장과 부드러운 회색 잠옷바지가 손에 잡혔다. 바지는 군데군데 올이 보일 정도로 낡아 있었지만... 매우 부드러웠다. 천사는 그 옷들도 가방에 넣은 후에야 지퍼를 닫았다.



그는 크롤리의 침실 방문 앞에 잠깐 서서, 느리고 차분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후 눈물을 닦아내고 크롤리가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크롤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렸다. 천사의 심장이 공포로 요동쳤으나, 곧 사무실 밖에서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에도 크롤리는 창문 근처에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분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심하게 갈변되고 다 시들어가는 식물이 담긴 작은 화분을 들고 있었다. 잎들이 매우 느리게 펴지더니 다시 초록색으로 생생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크롤리는 분무기를 떨어뜨리더니 비틀거렸다.




아지라파엘은 얼른 곁으로 가서 한 팔로 친구를 둘러서 잡아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닥에 부딪혀 깨지기 전에 화분을 넘겨받았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팔에 기대 몸을 가누며, 약간 어지럽고 멍함을 느끼며 천사를 올려다봤다.



크롤리가 쓰고 있는 익숙한 선글라스를 보자 아지라파엘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크롤리의 눈이 가려져 있다는 생각에 큰 상실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크롤리의 마음을 평소보다 읽기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래도, 졸리고 멍해 보이긴 하지만, 크롤리는 확실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크롤리를 좀 더 크롤리답게 보이게 해준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필요한 게 아니라 크롤리에게 필요한 게 중요하지. 아지라파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화초 하나를 살리는데 힘을 소진하고 기절해 버리는 상황만큼은 크롤리에게도 필요 없을 것이다.




“얘야, 뭐하는 거니?” 천사가 살짝 화가 난 어조로 물었다.



“그냥... 한계를 시험해 보는 중이었지.” 크롤리는 약간 변명하듯 설명했다.

“오랫동안 기적이란 걸 안 써봤으니...”



“그래서 오늘 이 많은 식물들을 다 살리겠단 거야?” 아지라파엘이 한숨을 쉬었다.




크롤리는 힘겨운 듯 아지라파엘의 품에 기댔다. 아지라파엘을 따라 방을 가로질러 소파를 향해 가면서, 악마는 약간 비틀거렸다. 소파는 아지라파엘의 거실에 있는 것보다 훨씬 불편했고, 훨씬 새 거였다. 크롤리는 낮고 겸연쩍게 웃었다.



“그건 안 되겠지.” 크롤리가 동의했다.



“기억해. 차까지 갈 동안 네가 날개를 숨겨야 돼... 그리고 서점까지 갈 동안 또 숨겨야 되잖아.” 아지라파엘은 크롤리 옆에 앉으며 부드럽게 나무랐다.



“멀지도 않은걸.” 크롤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몇 분 동안은 문제없어.”



아지라파엘은 반박하지 않았으나, 크롤리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둘은 몇 분간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크롤리는 숨을 고르는 중이었고, 아지라파엘은 그저 옆에 앉아서 친구의 등을 부드럽게 문질러줬다.




“미안, 천사야.”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크롤리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정신없고 필사적인 애원이 아니었다. 훨씬 안정된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다. “넌 그냥 도와주려고 했는데 화만 내서.”



“괜찮아, 크롤리. 누구한테라도 화날 만한 상황이었잖아!”



“그래도... 너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데.”

크롤리는 시선을 돌렸고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 내가 계산을 잘못 했나봐. 그 정도의 고통 속이라면, 그- 그 상황에선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잖아. 그러니... 그냥 한 달이었을 거야. 내가 착각한 거야.”



크롤리의 순순한 시인에 아지라파엘은 불안해졌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크롤리의 눈을 보고 싶었다. 아지라파엘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아무튼 어찌 됐건... 내가 좀 더 조심해야 했어. 말도 그렇고, 또...”



“난 네가 좀 덜 조심하면 좋겠는데.” 크롤리의 목소리에 아지라파엘은 말을 멈췄다. 천사는 놀란 기분으로 이어지는 크롤리의 말을 계속 들었다.

“난 괜찮아질 거야, 천사야. 약속할게. 시간만 좀 줘. 그리고 – 원래처럼 날 대해주면 좋겠어. 예전처럼. 그냥-그냥 최대한 정상처럼 대해줘. 넌...넌 날 마치... 어, 연약한 아기처럼 대하고 있잖아.”




하지만 크롤리는 연약했다. 그는 망가져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입술을 깨물며 근심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겨우겨우 대답했다.

“미안해. 네가-네가 그렇다면야...”



“진심이야.”



아지라파엘은 반박하고 싶었다. 친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크롤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미소였으나, 지난 한 달간 아지라파엘이 그리워하던 반가운 모습이었다. 천사의 모든 본능과 감정이 이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마음을 존중해야 했다.



“알았어.” 천사는 마침내 짧게 대답했다. “최대한 노력할게.”



크롤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을 뻗어 아지라파엘의 손을 잡았다. 먼저 다가온 것이다. 작지만 희망적인 발전이었다.

“갈 준비는 됐어, 천사야?”

크롤리는 부드럽게 물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들이 확인하러 오면 어떡하려고.”



“네 말이 맞아.” 아지라파엘은 동의하며 일어섰고 발밑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깐 망설이더니, 크롤리가 기적으로 살려낸 식물도 챙겼다. “너는 준비됐고?”



“농담하는 거지?” 크롤리는 주머니 속에서 벤틀리 키를 꺼냈다. 식물들을 돌보기 전에 차키를 챙겼던 모양이었다. “이게 뭐라고 생각해?”



이제 크롤리의 미소는 진심이 묻어났고, 활기가 넘치며, 전염성이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들은 최대한 빠르게 벤틀리로 돌아가 차문을 닫았다. 고작 몇 분이 걸렸을 뿐이었다. 이토록 짧은 시간 환각을 건 것뿐인데도, 크롤리는 몸을 숙여 운전대 위에 머리를 기대고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걱정을 너무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옆에서 부드럽게 친구의 등을 쓸어주기만 했다.



몇 분이 지나자, 크롤리는 고개를 들어 아지라파엘에게 지친 표정으로 씩 웃어주더니 시동장치에 차키를 꽂아 넣었다. 그는 각종 계기와 노브, 버튼들을 점검했다. 기적으로 운전할 때는 할 필요도 없던 행동들이였다 – 운전을 배울 생각이 전혀 없는 아지라파엘에게는 이해도 안 되고 의미도 없는 일이긴 했지만 – 그리고 나서야 차는 길을 나섰다.



처음 한동안,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이 운전하던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차를 몰았다. 아지라파엘은 아쉬움이 드는 자신에게 약간 놀랐다. 하지만 서서히 크롤리는 속도를 올렸고, 악마의 미소는 커져갔다. 그는 시트에 몸을 기대며 어깨의 긴장을 풀더니 익숙하게 차를 몰았다.



“역시 내 아이야. 변한 게 없군. 내가 얼마나 얘를 그리워했는데!” 크롤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지라파엘은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크롤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천사는 저도 모르게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를 그리워했는데.”



크롤리는 그 말에 갑자기 천사를 쳐다봤고,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눈에 담긴 감정을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크롤리는 약간 으스대면서도 쑥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아지라파엘의 손을 잡았다. 시선을 다시 길로 돌리며, 그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들어 입술에 대더니 부드럽게 키스를 하고는, 맞잡은 손을 그대로 내렸다.




그들은 서점에 도착했고, 크롤리는 다시 날개를 감춰야 했다. 문이 닫히고, 크롤리는 계단을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 아지라파엘이 팔로 받쳐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낮잠 좀 잘까봐, 천사야.” 크롤리는 낮고 약간 불분명하게 중얼거렸다. “완전 기진맥진이야.”



“왠지 알만하다.” 아지라파엘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 시끄러워.” 크롤리는 툴툴거리긴 했지만, 부드럽고 애정이 담긴 대답이었다.



아지라파엘은 침실까지 그를 부축해줬다. 크롤리는 침대 가에 앉았고 아지라파엘은 친구 옆 매트리스 위에 짐이 든 가방을 내려놨다. 천사는 가방을 열어 자신이 골랐던 부드러운 파자마 한 벌을 꺼냈으나, 크롤리는 손을 뻗어 아지라파엘을 자신의 다리 사이 안으로 끌어당기더니 천사의 배에 머리를 기댔다. 부드럽고도 애정 어린 기쁨이 아지라파엘을 감쌌다. 천사는 양팔로 크롤리를 감싸 안았고, 한손으로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롤리는 만족이 담긴 작은 콧소리를 냈다.



“아,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좋다.” 평온한 방에 아지라파엘의 나직한 목소리만이 들렸다.

“이 자세로는 제대로 잠 못 자, 얘야. 잠깐만 있어봐, 더 편안한 곳에 들어가게 해줄게.”



“음, 내 생각엔... ‘더 편안한 곳에 들어가고’ 싶은 건 너 인거 같은데.” 크롤리는 부드럽고도 암시적으로 쉭쉭 소리를 내서, 일부러 그 구절의 어조만을 외설적으로 들리게 했다.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약간 꾸짖듯이 말했다. 천사의 목소리가 이렇게 떨리지만 않았다면 좀 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왜?” 크롤리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가볍게 쓰다듬는가 싶더니, 손가락으로 천사의 팔을 쓸어내렸다. 이 단순하고 순수한 접촉이 이렇게까지 관능적으로 느껴질 줄이야. 크롤리의 목소리는 낮고 유혹적이었다. “너도 내가 그리웠다며.”



“그리웠어.” 아지라파엘은 쉰 목소리로 고백했고, 열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크롤리의 머리에서 손을 내려 친구의 얼굴을 감쌌고, 크롤리는 고개를 돌려 아지라파엘의 손바닥에 살짝 입을 맞췄다. “너무 그리웠어.”




아지라파엘은 떨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크롤리는 쉬어야 했다. 그에겐 힘들고 고된 하루였다. 크롤리는 이 방으로 오는 도중에도 거의 기절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아지라파엘은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하나의 생각을 마음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천사는 크롤리의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몸을 숙여 악마의 입술에 키스를 했고... 부드럽고도 천천히 그 순간을 음미했다. 크롤리가 열정적으로 응답하면서 둘은 점점 격렬해졌다. 크롤리는 한손을 들어 아지라파엘의 머리카락을 절박하게 움켜쥐더니 자신 쪽으로 더 가까이 당겼다. 아지라파엘의 떨리는 양손이 친구의 어깨를 훑어 내렸고, 서두른 나머지 살짝 더듬거리며 크롤리의 셔츠단추로 향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게 달라졌다.



크롤리의 손이 다급하게 아지라파엘의 양 손목을 잡았으나, 천사의 양손을 자신의 가슴에서 떼지는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손 밑에서 크롤리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악마의 감정이 아지라파엘에게 파도처럼 흘러들어왔다. 절망과 욕망, 그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으나, 하나의 감정이 유독 심하게 느껴졌다 – 공포였다. 어젯밤, 자신이 크롤리에게 셔츠를 벗어보라고 했을 때 크롤리의 반응이 떠올랐다.



크롤리는 선글라스 너머로 아지라파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악마는 입술을 벌린 채 공포로 떨면서 가쁜 숨을 쉬고 있었고,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눈을 볼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원했다.




“이럴 필요 없어.” 아지라파엘은 그렇게 속삭이긴 했으나, 가슴은 낙담으로 가득 찼다.

“네가 – 아프다거나, 아니면...”



“하고-하고 싶어.” 크롤리가 꿋꿋이 주장했다. 그가 다른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던지 간에, 아지라파엘은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안 아파. 이건...그냥...” 크롤리는 천천히 목을 삼키더니 입술을 깨물었고, 망설이더니 나직하게 속삭였다. “...눈 좀 감아줄래?”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크롤리의 수치심에 아지라파엘의 심장이 . 크롤리가 왜 이렇게 수치심을 느끼는지 천사는 알 길이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고 느끼는 크롤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크롤리가 원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 천사가 동의했다. “물론이지, my dear.” 천사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크롤리를 기다렸다.



크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요하게 움직였다. 길고도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곧이어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손길을 느꼈고,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본인의 셔츠단추에 다시 가져다 대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의 입이 말랐고, 심장은 마구 뛰었다. 천사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단추를 풀었다. 크롤리의 손이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천사의 손목을 완전히 놓았고, 내려가는 손이 단추를 계속 풀도록 내버려뒀다.



단추를 다 풀고 나서, 아지라파엘은 셔츠 아래로 손을 미끄러지듯 넣어 크롤리의 어깨 뒤로 조심스럽게 셔츠를 벗겨냈다. 천사는 한손으로 크롤리의 뒷목을 감싸더니 그를 끌어당겨 다시 키스를 했다. 크롤리는 한손으로 아지라파엘의 가슴을 살짝 밀었고, 아지라파엘은 얼른 뒤로 물러났다.



“잠깐만.” 크롤리가 숨도 안 쉬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잠시만...”



아지라파엘은 기다렸고, 크롤리가 벨트를 풀고 청바지를 벗는 소리와 부드럽게 사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크롤리의 손이 천사를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크롤리의 입술이 천사의 입술에 맞닿았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자신이 골라줬던 부드러운 파자마의 감촉이 느껴졌다.



크롤리는 조용히 헐떡이며 입을 뗐다. 아지라파엘의 입술에 닿은 그의 숨은 차가우면서도 떨리고 있었다. “이제 눈 떠도 돼, 천사야...” 크롤리가 속삭였다.




아지라파엘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초점을 맞췄다. 파자마를 입은 채 침대 모서리에 반쯤 걸터앉아 있는 크롤리의 모습에 천사의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실망스럽게도, 선글라스는 여전히 쓰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욕망과 실망감을 억누르면서, 크롤리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들어가 그의 허리에 가만히 양손을 얹었다.



“이제 됐어.” 천사는 애정을 담아 가볍게 말했다.

“이 차림으로는 훨씬 더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야.”



크롤리는 살짝 능글맞게 웃으며, 양팔로 아지라파엘의 뒷목을 감싸서 천사를 아래로 조금 당겼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크롤리는 낮고 도발적으로 중얼거렸다.

“자고 싶은 게 아니야.”



아지라파엘은 친구가 자신에게 느리고 나른하게 키스를 하도록 내버려뒀다. 어떻게 크롤리에게 계속할 할 힘이 남아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지라파엘은 계속할 힘이 많이 남아있었다.




크롤리도 자신을 연약하게 대하지 말라고 그랬지... 너무 걱정만 하지 말라고...



유혹과도 같은 생각이었다.



천사는 허락을 맡은 셈이었다. 크롤리도 원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확실히,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 싫어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옷을 굳이 벗을 필요는 없었으나, 천사가 주저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지라파엘이 크롤리를 밑으로 내리누른다면 친구의 다친 날개는 망가져버릴 것이다. 크롤리의 손이 아지라파엘의 조끼 아래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손은 탈진으로 떨리고 있었다 – 아니, 천사는 그 이유가 단지 탈진이기만을 바랐다. 열정적인 손길과는 달리, 크롤리는 거의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자신의 욕망과 싸운 끝에, 아지라파엘은 결정을 내리고 손을 튕겼다. 천사의 옷은 부드럽고 편안한 잠옷으로 변했다.



“그럼 그냥 옆에 누워만 있을게.” 아지라파엘이 마침내 대답했고, 친구의 날개가 아프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크롤리를 자신의 옆에 부드럽게 밀어 눕혔다.

“자지는 않겠지만 네 옆에 있을 거야.”



크롤리는 매트리스 위에 누운 채 뒤쪽으로 조금 물러나, 아지라파엘도 같이 누울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줬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얼굴을 마주보며 누웠다. 크롤리는 얼른 아지라파엘에게 다가가 천사의 셔츠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아지라파엘은 부드럽게 악마의 손을 잡아 빼내더니, 잠시 손을 맞잡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천천히 하렴, darling.” 천사가 속삭였고, 그는 맞잡은 손 너머로 몸을 기울여 크롤리의 입가에 키스를 했다. “서두를 거 없으니까.”



천사는 뒤로 약간 물러나서... 크롤리의 표정을 읽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아지라파엘은 망설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곧 조심스럽게 크롤리의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벗겨냈다. 아지라파엘의 손이 자신의 얼굴에 다가오자 크롤리는 약간 긴장했으나, 천사가 선글라스를 벗겨 뒤의 침실용 스탠드에 두도록 내버려뒀다.



“그냥... 널 보게 해줘.” 천사는 속삭이며 악마의 손을 놓았다. 천사는 크롤리의 뺨을 감쌌고 엄지손가락으로 다정하게 그의 턱선을 훑었다.



크롤리는 눈을 감고 천천히 목을 삼켰으나, 천사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아지라파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숨을 멈추더니, 떨리는 손으로 천사의 허리를 감쌌다. 아지라파엘은 몸을 더욱 기울여, 자신의 엄지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부드럽고도 나른하게 입을 맞췄다. 천사는 그대로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크롤리의 목옆에 살포시 얹었다. 크롤리는 천사를 끌어당기며, 아지라파엘이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다독거리듯 계속 쓰다듬어줬고, 깃털처럼 가볍게 친구에게 입을 맞췄다.



아지라파엘은 오랫동안 다정하게 크롤리를 달래줬다. 천사의 허리에 놓인 크롤리의 손이 서서히 떨림을 멈췄다. 악마의 몸이 진정되었고, 그의 눈이 점점 오래 감기더니... 완전히 감겼다. 숨소리도 느려졌다.



아지라파엘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빼냈다. 그는 잠깐 동안 친구를 찬찬히 바라봤다. 크롤리는 너무나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이 평화가 오래가진 못하리란 걸 천사도 알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매트리스가 너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서 담요를 들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천사는 움직이지 않는 크롤리 위에 담요를 덮고는, 편안하도록 꼭꼭 감싸줬다. 천사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크롤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크롤리는 이 집에서 안전했으며, 자신이 그를 찾은 이래로 가장 그답게 보였다. 천사는 불을 끄고 침실 문을 닫고 나갔다.



아지라파엘은 거실로 돌아와 가브리엘이 준 칼라에 대한 설명서를 꺼내들고 소파에 앉았다. 크롤리가 쉬고 있는 동안 저 지독한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바라건대, 저걸 어떻게 떼어낼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 설명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설명서라고 할 수 없었다. 표지에는 고작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장치 #777034-D – 행동 교정을 위한 칼라 – 분류: 악마” 안쪽은 비어있는 한 페이지 밖에 없었다. 아지라파엘은 이런 설명서를 이전에도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이건 천국의 기술 중 하나였으며, 따라서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빈 페이지를 펴면서, 천사는 기대에 차서 낮게 콧소리를 냈다. 아지라파엘은 눈을 감고 소리 내어 물었다.



“어떻게 저 장치를 제거하나?”



그는 눈을 떠서 페이지를 내려다봤다. 모두 대문자로 된 볼드체의 글자들은 하나의 문장만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 문장을 읽자 천사의 희망이 가라앉아 버렸다.



불가능합니다. (YOU DON’T)



아지라파엘은 그 문장을 노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이걸 떼어낼 수 있지?” 그가 다시 시도했다.



그러자 대답이 서서히 나타났다.



대천사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아지라파엘은 절망에 찬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잠깐 생각하더니 다르게 질문을 해봤다.



“악마의 날개가... 지상의 차원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날개를... 영적 차원으로 다시 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천사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아지라파엘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명서가 실제로 여러 장으로 되어 있었다면, 그는 좌절에 빠져 이걸 산산조각으로 찢어버렸을 것이다. 천사는 진정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그는 어떤 질문을 더 해야 할지, 칼라에 관해 뭘 더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잠시 후, 질문 하나가 떠올랐고, 천사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기울였다.


“이 장치가 악마의 현실이나... 시간의 인지 능력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가?”



질문이 불명확합니다. 좀 더 명확하게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아지라파엘은 패배감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고, 설명서를 옆에 잠시 밀어두고는 대신 한 달 전에 막 읽기 시작했던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크롤리가 사라진 순간부터, 그 책은 커피 테이블에 잊혀진 채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지금 상황에서, 그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크롤리에 대한 생각이 났다.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들과, 친구가 겪었던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작 한 달이었어. 아지라파엘이 혼잣말을 했다. 확실해. 아마 그 작자들이...약물을 주입했거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어떤 잔인한 기적을 부린 게 아닐까...




저녁이 찾아왔고 창문 밖 하늘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심란한 생각들에 너무 깊이 잠긴 나머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고, 차를 끓이고 간단히 먹을 것도 가져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천사는 식욕이 거의 없었다. 무겁게 한숨을 쉬며, 그는 거실로 돌아와 다시 설명서를 집어 들었다. 천사는 뭘 물어야 할지 신중히 생각하며 설명서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아지라파엘의 시선이 아래로 가더니, 몇 시간 전에 거의 죽어가던, 아름답고 생생한 작은 식물에 꽂혔다.



“장치를 하고도 악마 스스로 치료가 가능한가?”



그러려면 당연히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크롤리는 완전히 지쳐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지라파엘 대신 크롤리가 기적으로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면...



이 장치는 자가 치료, 그리고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모두 억제하고 있습니다.



아지라파엘은 실망에 빠져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놀랄 것도 없지, 그가 씁쓸히 생각했다. 상처를 기적으로 간단히 없애버리는 게 가능하다면, 누군가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어떤 이유로든 장치를 일시적으로 끌 수는 있나?”



대천사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칼라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을 게 분명했다. 아지라파엘은 그에게 요청해볼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법이 있을 거야. 어떤...어떤 인간들이 쓰는 방법이 있을 거야, 아마. 어쩌면 주문 같은 거라도...




아지라파엘의 생각은 침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쾅 소리에 갑자기 끊겨버렸다. 뒤이어 고통과 두려움에 찬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천사는 얼른 일어서서 침실로 달려갔다.



“크롤리?” 천사는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눈을 깜빡였다. 크롤리가 무릎을 팔로 끌어안은 채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날개가 보호하듯 크롤리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크게 뜬 금빛 눈에 복도의 희미한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침대로 올라가 크롤리 곁에 앉았다.

“사랑하는 크롤리, 괜찮아?”



천사는 크롤리를 따라 침대 머리판에 몸을 기댔고, 친구를 안아주려고 팔을 뻗었다. 크롤리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내며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제발... 안 돼요, 이러지 마요...”



“나야, 얘야.” 아지라파엘은 친구를 안심시키며 다시 팔을 뻗었고, 이번에는 크롤리를 안을 수 있었다. 천사는 크롤리의 날개 밑으로 팔을 둘렀다.

“괜찮아, 넌 안전해. 나야...”



“아지라파엘.” 크롤리는 숨을 헐떡였고, 아지라파엘의 손길 밑에서 몸을 심하게 떨었다. 악마는 어둠 속에서 계속 눈을 깜빡거렸다. “너-네가 안 보여...”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렸다. 크롤리의 본질은 뱀이었고, 그의 야간 시력은 언제나 뛰어났다. “안 보인다니?”



“너무 어두워.” 크롤리가 흐느꼈고, 그는 아지라파엘의 품에서 웅크리더니, 몸을 돌려 천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여. 부탁이야, 천사야...”



아지라파엘은 망설이지 않고 즉시 손을 튕겼다. “빛이 있으라!”



부드러운 빛이 둘을 감쌌으나, 크롤리는 여전히 아지라파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는 아지라파엘의 잠옷 셔츠를 꽉 쥐었다.



“고개 좀 들어봐.” 아지라파엘은 다정하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크롤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진정시켰다. “이거 봐, 크롤리. 이제 안 어두워. 괜찮아. 안전해. 고개 좀 들어봐, 얘야...”



크롤리는 드디어 고개를 들었고, 아지라파엘을 보면서 눈을 깜빡여 초점을 맞췄다. 크롤리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에 담긴 상실감과 공포에, 아지라파엘은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심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꿈...꿈을 꾸고 있었는데, 일어나 보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래서... 그래서 나는...” 크롤리는 힘들게 목을 삼키고,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서 뭐?” 아지라파엘이 재촉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love, 말 좀 해줘...”



크롤리는 거절의 뜻으로 계속 고개를 저으며, 아지라파엘의 몸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왜 어두운 곳에서 안 보이는 거야, 크롤리? 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지라파엘이 끈질기게 물었다.



“몰라.”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을 움켜잡더니 가까이 끌어당겼고,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부탁이야, 말 안할래, 천사야. 그냥... 부탁인데 제발... 그-그러지 마...”



“그래, 알았어. 괜찮아. 얘야, 말하기 싫으면 할 필요 없어.”

아지라파엘은 다정하게 친구를 진정시켰고,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제 괜찮아. 여긴 나뿐이야. 내가 있잖아...”



“미안해.” 크롤리가 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의 비참하고 무너진 목소리는 아지라파엘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노력했는데,” 악마가 흐느꼈다. “정말 노력했는데...”




아지라파엘은 잠깐 무슨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 그러다가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크롤리는 힘이 없음에도 고집해서 기적을 부렸었다... 선글라스와 드라이브에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그는 추파를 던지며 자신을 놀려댔고,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크롤리는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그답게 보였다. 갑자기 말이다.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조금 물러서서, 크롤리의 얼굴을 감싸곤 자신 쪽으로 살짝 들었다. “노력할 필요 없어.”



크롤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젓더니, 손을 들어 아지라파엘의 손목을 잡았다.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접촉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거였다. 그는 날카롭고 얕게, 그리고 너무 빠르게 헐떡이고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괜찮지 않아도 돼, 아직은 이르잖아. 네가 겪었던 일들을 봐...” 아지라파엘이 꿋꿋이 주장했다. “네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할 필요 없어. 괜찮아.”



“맞아.” 크롤리가 흐느끼며 마침내 대답했다. 비탄에 잠긴 고백이었다.

“아니야, 아닌가봐...”




준비가 되지 않았어. 괜찮지도 않아.




“당연한 거야.” 아지라파엘이 강하게 안심시키듯 속삭였고, 보호하듯 양팔로 크롤리를 감싸곤 세게 힘을 줬다. 크롤리는 다시 천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아, 크롤리. 진짜로... 난 여기, 네 옆에 있어.”




악마는 익사 직전에 천사가 마지막 생명줄인 것 마냥 아지라파엘에게 매달리며, 천사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아지라파엘은 그런 크롤리를 한동안 꼭 안아줬다. 서서히 크롤리의 울음이 진정됐고, 숨소리도 차분해졌다. 아지라파엘을 꽉 잡고 있던 손도 느슨해졌다. 완전히 지친 모양이었다. 그 모든 과정 동안, 아지라파엘은 친구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고, 느리면서도 규칙적으로 크롤리의 등을 위아래로 쓸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천사는 크롤리의 관자놀이에도, 얼굴에도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안심의 말을 속삭였다.



“이제 잘 수 있겠어, 사랑하는 크롤리?”

오랜 끝에 드디어 크롤리가 품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자, 아지라파엘은 용기를 내서 물었다.



크롤리는 몇 분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으나, 아지라파엘은 자신의 셔츠를 단단히 쥐는 손가락을 느꼈고, 친구가 느리게 떨면서 목을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크롤리는 아직 깨어있었다. 마침내 크롤리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속삭였다.



“같이... 같이 있어줄 수 있어?”



“당연하지.” 아지라파엘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천사는 크롤리를 안고 있던 한쪽 손을 놓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기적으로 불러낸 빛을 끄기 위해 손가락을 튕길 준비를 하며 팔을 들어올렸다. 크롤리는 재빨리 손을 뻗더니 천사의 소매를 잡아 팔을 밑으로 끌어당겼다. 아지라파엘은 당황하며 악마를 바라봤다. 크롤리의 눈에는 애원과 불안함이 담겨 있었고, 그 모습에 천사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죄여왔다.



“그냥 놔둬도 돼?” 크롤리가 절박하게 속삭였다. “응? 제발... 놔두면 안 돼?”



아지라파엘은 깊은 걱정을 느끼며 친구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알았어, my dear.” 천사가 맹세했다.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괜찮아.”




아지라파엘은 방금 있었던 일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곧이어 차갑고도 끔찍한 느낌이 가슴속에 들어찼다. 크롤리의 야간 시력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떤 잔인한 고문을 당했길래 눈이 영원히 손상될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야간 시력이 사라진 건 둘째 치고, 크롤리는 어둠을 너무나도 두려워했다...




세상에 어떤 악마가 어둠을 두려워하던가?



“난 널 믿어.” 아지라파엘이 속삭였다. 그 말을 할 때조차도 긴가민가했으나... 말을 꺼내자마자 천사는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

“이해가-이해도 안 되고, 어떻게 이게 가능한건지도 모르겠지만... 난 네 말을 믿어, 크롤리. 확실해. 더 길었던 게 틀림없어.”



그래야만 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악마를 이토록 완전히 망가뜨리고, 마지막 남은 자존감과 안정감마저 모조리 찢어버리려면 말이다. 크롤리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마음은 오로지 공포와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아지라파엘과 나눴던 사랑이나, 같이 생활하곤 했던 추억이 있을 여유가 없었다.



더 길었던 게 틀림없었다.



크롤리는 목이 막힌 듯, 거의 소리조차 내지 않고 흐느꼈다. 그는 아지라파엘을 꽉 쥔 채 더 가까이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에게서 흘러들어오는, 감사함이 담긴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천사가 자신을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크롤리는 확신과 안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쉬렴, 얘야.” 아지라파엘이 부드럽게 권했다. “알아낼 거야.”

약속을 지키려면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지라파엘이 유일하게 아는 거라곤, 어떻게든 자신은 약속을 지킬 거라는 사실이었다. “알아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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