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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session 7

아지크롤아지 가브크롤

크롤리는 의식이 몽롱했다. 편안하면서도 조용했고, 따뜻하면서도 안전했다.



그를 덮고 있는 담요의 안락한 무거움과, 날개에 스치는 부드러운 벨벳을 느낄 수 있었다. 밑에 있는 아지라파엘의 친숙하고 부드러운 몸이 느껴졌다. 천사의 팔이 그를 두르고 있었다. 한쪽 손은 크롤리의 허리에 놓여있었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있었다. 항상 존재하던 고통은 조용했고...희미했다.



하지만...여전히 고통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점점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온기에 더 가까이 다가기 위해 약간 몸을 움직였고, 그러자... 그래, 그렇지. 몸을 움직이자 극심한 고통이 날개 전체를 관통했다. 고통은 신호였다. 현실로 곧 다시 돌아간다는 경고였다.



싫어, 안 돼, 일어나기 싫어, 아직은... 제발, 조금만 더 이대로 있을래...



크롤리는 잠자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잠은 좀처럼 허락되지 못하는 특권이었고, 동시에 추억이라는 마음의 피난처를 향한 도피였다. 그리고 깬다는 건 – 불에 타오르고 부서지며 내지르는 거친 비명을 의미했다. 완전히 망가진, 쓸모없는 조각이 될 때까지 그를 찢어발기는 잔인한 손길을 의미했다.



“쓸모없는 것...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그가 뭐 하러 네놈을 위해 오겠나?”



악마는 몸을 떨었다. 날개가 쑤셨고, 성수가 피부를 타고 흐르는 것 마냥 온몸이 화끈거렸다. 그는 눈을 세게 감고 다시 잠이 들려고 노력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지라파엘과의 추억에 매달려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네놈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 것일 뿐이지...”



“크롤리... 크롤리, love, 일어나. 괜찮아...”

아지라파엘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급박했고, 크롤리의 귀에 닿는 천사의 숨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정말 진짜 같네, 하지만 그럴 리 없겠지, 이곳에서는-

“넌 안전해, 여긴 집이야. 나랑 같이 있는 거야. 얘야, 일어나봐, 좀 일어나봐...



크롤리가 눈을 떴고, 머리 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칙칙한 햇살에 눈을 깜빡였다. 그는 아지라파엘의 거실에서, 아지라파엘의 소파에 누운 채, 모든 팔다리로 아지라파엘을 붙들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감싸곤 그의 머리를 들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진짜가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나 좀 봐, 크롤리... 잠깐만이라도 좀 봐줘...”



싫어, 안 돼, 그래선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네놈이 속한 땅으로 시선을 처박아라, 이 쓸모없고 쓰레기 같은 악마야... 감히 쳐다보지도 말란 말이다!”



“크롤리. darling, 부탁할게... 제발 나 좀 봐봐.”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러라고 명령을 받았잖아. 해야 돼, 얼른, 안 그럼 화낼 거야. 그냥 좀 말 들어, 이 멍청하고 천한 것아, 지금 당장, 지금 당장...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억지로 시선을 올렸다. 빛나는 푸른색과 마주치자 그는 숨이 막혔다. 아지라파엘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고, 천사는 손으로 크롤리의 얼굴을 감싼 채 엄지로 광대뼈를 쓰다듬고 있었다.



“괜찮아.” 아지라파엘이 중얼거리며 안심시켰다.

“넌 괜찮아, 이제 집이고 안전해.”



크롤리는 오랫동안 아지라파엘을 바라보기만 했다. 천사의 낯익은 곱슬곱슬한 머리칼과 얼굴선을 넋 놓고 보다가, 익숙한 방을 훑어보았다 – 꿈이라기엔 너무 정확하고 세밀했다.

그러자 갑자기 크롤리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고, 그는 헐떡이며 아지라파엘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악마는 천사의 옆쪽을 그러쥐더니 그의 천사에게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현실이었구나.” 크롤리가 겨우 말을 내뱉었다. “진짜야, 진짜였어...”



“맞아.” 크롤리를 흔들어 달래느라 조금 떨리긴 했지만, 아지라파엘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들어있었다. 천사는 한쪽 손을 크롤리의 등 아래쪽에 조심스럽고 가볍게 얹었다. “그래, 얘야. 진짜야. 여긴 집이야.”



얼마 후, 아지라파엘은 크롤리 밑에서 살짝 빠져나와 몸을 일으키려고 했고, 크롤리는 마지못해 천사가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만 물러났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아직 떨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천사는 한쪽 팔을 뻗어 크롤리의 손을 쥐며, 조심스럽게 다른 팔을 크롤리의 어깨에 둘렀다.



“미안해, my dear.” 아지라파엘이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어디를 만져야 안 아플지... 잘 모르겠어서... 보질 못했으니...”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잡더니, 천사의 팔이 자신의 등 한가운데를 감쌀 수 있을 때까지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 과정에서 아지라파엘의 팔이 절반 정도 나은 화상을 스치며 내려갔고, 등이 불타는 것 같았으나 크롤리는 얼굴도 찡그리지 않았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차갑고 숨 막히는 공포가 느껴졌지만, 악마는 천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실대로 말하고 있다고 아지라파엘을 설득하는 방법은 이것밖엔 없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했잖아, 난 괜찮아, 천사야. 그냥 날개만 다친 거야. 더 치료가 필요한 곳은 없어. 며칠만 더 있으면 좋아질 거야.”



아지라파엘은 오랫동안 친구를 뜯어봤고, 크롤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천사의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아지라파엘의 표정은 부드러워졌고, 크롤리의 말을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최소한 믿는 척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알았어, 얘야.” 천사는 부드럽게 말하곤, 자리에서 약간 일어나서 크롤리의 뺨 위에 입을 맞췄다. 크롤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서 아지라파엘의 목 안쪽에 머리를 얹었다.



“어디를 만지든 괜찮아.” 크롤리의 목소리는 낮고 아지라파엘의 셔츠에 묻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게 너라면 말이야.”



아지라파엘은 부드럽게 소리 내어 웃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친숙하고, 너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소리였다. 웃음소리의 부드러운 진동이 크롤리의 온몸에 전달되며, 그를 따뜻하게 해주고 공포를 잠재워줬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머리카락에 키스하며 낮고 은밀하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크롤리는 약간 몸을 떨었다. 그는 어떻게든 절박하게, 미끄러지듯 아지라파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둘은 한동안 편안한 침묵을 유지했고, 아지라파엘은 두 팔로 크롤리를 감싸더니 한 손으로 부드럽게 등을 쓸어줬다. 천사의 손가락이 등의 상처들을 가볍게 쓸자 약간 따가웠다. 하지만 크롤리가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상처는 잘 낫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감싼 아지라파엘의 팔과 손에 치러야 할 대가가 이처럼 약간의 고통뿐이라면, 그렇다면...




치러야 할 대가치곤 작은 셈이었다. 그는 훨씬 심한 고통을 받아왔으니까.




얼마 후, 아지라파엘은 만족한 듯 작게 흥얼거리더니 살짝 몸을 움직여 똑바로 앉았고 크롤리는 마지못해 약간 물러났다.



“이렇게 계속 더 있다간 다시 잠들 거 같아.” 아지라파엘이 명랑하게 말했다.



크롤리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침 먹을까?” 아지라파엘이 물었다.



“배 안고파.”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살짝 잡아당기며 대답했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애원을 참아야 했다.



같이 있어줘...



“바보야.” 아지라파엘이 경쾌하게 일어섰다.

“넌 사람들처럼 나아야 되고, 그러려면 먹어야 돼. 단백질이 많이 필요하다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아지라파엘은 애정을 담아 크롤리의 손을 꼭 쥐더니 부드럽게 손을 뗐다.

“널 치료할 순 없지만 돌볼 수는 있지. 내가 널 돌보게 해줘.”



크롤리는 그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평화로운 정적 속에 앉아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의 온기를 즐겼고, 부엌에서 나는 아지라파엘의 부산스럽고 편안한 소리를 들었다. 크롤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 작은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는 유혹적인 냄새를 즐겼다.



먹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진 않았다. 아지라파엘과 달리, 먹는다는 것은 그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둘이 아지라파엘의 작고 어질러진 테이블에 앉았을 때, 크롤리는 음식 대신 아지라파엘의 술 진열장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야. 크롤리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간 수준의 힘만 남았다는 건 곧 술에도 인간만큼 약하다는 거겠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 술의 힘을 빌려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평소의 악마적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평정심을 잃어버린다면... 모두 말해버리겠지... 절대로 지켜야 할 비밀마저 모두 흘려버릴 거야...

 

 

그래. 정말 안 좋은 생각이었군.



악마는 시선을 돌려, 접시 위에 놓인 확실히 잘 요리된 달걀을 한입 더 베어 물었고 동시에 아지라파엘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 작은 고난은, 아지라파엘의 빛나는 미소로 가치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지라파엘은 테이블로 몸을 약간 숙여 팔을 뻗어 크롤리의 손을 잡았다. 크롤리는 천사를 살짝 보더니, 친구의 진지하고 날카로운 표정을 보곤 얼른 눈길을 돌렸다. 악마는 불편함을 느끼며 대신 테이블 위의 맞잡은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지라파엘의 엄지가 천천히, 진정시키듯 자신의 손바닥을 쓸고 있었다.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아지라파엘이 무거운 침묵을 깨며 물었다.



크롤리는 천천히 침을 삼키며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조용하고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 날 집에 도착했더니... 그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어. 세 명이었고. 날 제압하더니 이걸 채우더라.” 크롤리는 혐오를 담아 칼라를 가리켰다. “그리고...그게 끝이야. 그 후론 싸울 수가 없었어. 한 방에, 그러니까...어, 여기서 충격이 왔어. 이걸 떼려고 했을 때랑 같은 강도였지.”



아지라파엘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천사의 입이 꽉 다물어진 채 화가 나 있는 모습이 크롤리에게 보였다. 크롤리는 몸이 떨리는 걸 참으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우리를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어. 사진도 있었어. 난 모든 걸 부정했어, 오-오랫동안. 하지만-그는 내 말을 안 믿었어. 심문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해봤지... 이미 날 잡았잖아, 그치? 내가 뭐라고 말해도 날 풀어주지 않았는데, 그건... 너까지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닌 거지.”



크롤리는 말을 멈췄다. 말하는 것조차도 너무나 빌어먹게 아팠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그 때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은 너무 빨리 뛰었으며 입은 건조해지고, 얕은 숨마저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괜찮아, dear, 계속하지 않아도 돼.”

아지라파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친구의 곁으로 가서 그를 안아줬다.



크롤리는 감사해하며 아지라파엘의 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손을 뻗어 아지라파엘의 허리 위에 얹었다. 악마는 천사의 따뜻하고 익숙한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마구 내달리는 생각들과 호흡, 맥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정말 미안해, 크롤리.” 아지라파엘이 말을 이었고, 목소리에는 죄책감과 슬픔이 묻어나왔다.

“정말 온갖 곳을 찾아봤어. 네가 천국에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 내 말은, 천국과 지옥은 항상 각자의 부하들만 처리했잖아. 지옥이 널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했어. 심지어 널 찾으려고 악마도 소환했는데 그쪽들도 모르긴 마찬가지였어.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붙잡혀서, 이렇게까지 고통 받다니. 내가 알아차리기만 했어도 널 쉽게 구해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크롤리는 절반 정도만 듣고 있었다. 그저 아지라파엘의 목소리만 들으며 천천히 진정하면서, 말의 내용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크롤리의 심장이 내려앉으며, 뒤죽박죽이던 생각들이 멈췄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약간 뒤로 물러나 아지라파엘을 올려다봤다.



“잠깐만, 뭐라고? 내가 없어진지 얼마나-얼마나 지났는데?”



“한 달.” 아지라파엘이 미안해하며 찡그렸다.

“더 빨리 못 구해줘서 정말 미안해...” 뒤늦게 천사는 크롤리의 표정을 발견했고 말이 흐려졌다. 천사는 당황해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래? 얼마나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어?”



크롤리의 입이 말랐다. 혼란스러움으로 토할 것 같았다. 자신이 잡혀있던 시간을 돌이켜 생각했고, 끝없는 고문과 수치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는 피와 뜨거움과 고통뿐인, 생생하고 강렬한 기억이 아닌 흘러간 시간에 집중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왜냐하면...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고, 마침내 불안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아지라파엘의 질문에 겨우 대답했다.




“...더 길거라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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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그렇게 웃길 정도로 일을 못하지만 않았다면, 크롤리는 자신과 아지라파엘의 관계에 대해 심문하는 이유를 좀 더 진지하게 걱정했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였다, 절대로. 천사들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천사들이 자신에게 한 짓이라곤 정말이지 한심스러웠다.



서너 명의 천사들이 돌로 된 작은 감방에 몇 시간마다 들어왔고, 그가 아지라파엘과 어떤 관계인지, 왜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것을 요구했다. 크롤리가 대답을 거부하면, 그들은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돌벽에 머리를 세게 박아버렸다 –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무기 하나조차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칼라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봐, 천국의 고문부서가 좀 뒤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

크롤리는 위협적이지도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앞의 천사를 향해 히죽거렸다.

“근데 이건 슬프다고 밖엔 못하겠다. 몇 번 주먹으로 맞았다고 내가 질질 짜면서 죄를 자백할 기회를 달라는 둥, 운명을 맡기겠다는 둥 네놈 발밑에서 애원할 거라 생각한 건가?”

크롤리는 비웃으며 혀로 이를 핥았고, 구리맛을 느꼈으나 계속 웃었다.

“망할 고문대라고 들어는 봤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봐줘?” 분노한 천사가 으르렁거리더니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크롤리는 눈을 굴렸다.



“그냥 좀 도움이 필요해보여서. 딱히 창의적인 고문기술자는 아니신가봐, 안 그래?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고.”



“그놈 말이 맞다. 자네는 정말 못하는군.”



크롤리는 가브리엘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갑자기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이 잡혀온 첫 번째 날을 제외하면, 이때까지 가브리엘을 본 적이 없었다. 본능이 그에게 일어나라고, 싸울 준비를 하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의 양 손목을 뒤쪽 벽에 고정하고 있는 사슬을 거북하게 쳐다보았다. 사슬 때문에 무릎으로 일어서는 것 외엔 할 수 없었다.



“네?” 천사는 눈을 크게 뜬 채 더듬거렸다, 확실히 기분이 상해 보였다.

“전 최선을...”



“그놈은 지옥의 최악을 겪었어.” 가브리엘이 지적했다.

“이런 어린애 놀음으로 일이 풀릴 거라 여긴 건가?”



“우린 천사들이에요.” 부하천사가 약간 언짢은 투로 화가 나서 말했다.

“고문을 잘 할 리가 없잖아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잘 해야 되네.” 가브리엘이 반박했고, 말을 하며 크롤리의 눈을 쳐다봤다. 대천사는 자신이 꾸짖고 있는 천사에게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천사는 어떻게 안건지, 부하천사가 뭐라 반박하려고 입을 열자 부하의 말을 자르며 명령했다.

“나가라.”



천사들은 복종했고...크롤리는 가브리엘과 단둘이 남겨졌다.



“좋아, 그럼.” 가브리엘은 크롤리 앞에 꿇어앉아 얼굴을 마주봤다. 대천사는 거만하고도 애정 어린 몸짓으로 크롤리의 머리카락을 쓸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제 얘기해볼까?”



크롤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가브리엘을 노려봤다.



그러자마자 가브리엘의 미소가 사라졌고, 그는 손을 뻗어 크롤리의 머리채를 한 움큼 쥐고는 고개가 뒤로 젖혀질 때까지 세게 당겼다. 그리고 벽에 고정된 사슬에 묶인 손목이 상할 정도로 악마를 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가브리엘이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



크롤리는 대천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저항한다면 자신의 목에 있는 칼라가 작동함을 알고 있었기에, 크롤리는 크게 저항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으며, 소리 없이 반항심을 담아 가브리엘을 노려보았다.



가브리엘이 천천히 미소지었다. 대천사는 손가락을 튕겼고, 순식간에 크롤리의 셔츠와 재킷이 사라지며 상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크롤리는 놀라서 다시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가브리엘은 그의 머리채를 세게 당겨 고개를 뒤로 젖혔고, 크롤리는 자신의 목이 부러지기 직전임을 느꼈다. 가브리엘은 몸을 숙여 크롤리의 귀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크롤리의 피부에 닿는 그의 숨은 따뜻했다.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가브리엘은 다시 손을 튕겼고, 대천사의 손에 위험할 정도로 날카롭고 은빛으로 빛나는 단검이 나타났다. 그는 벌어진 채 조용히 헐떡이는 크롤리의 입술 가까이 단검을 들이대며 악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크롤리는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을 느낄 수 있었다. 축성된 것이 틀림없었다. 크롤리는 힘들게 목을 삼켰다. 입이 건조했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가브리엘은 검을 아래로 내려서 크롤리의 완전히 드러난 목에 닿기 직전까지 갖다 댔고, 그의 입술 가장자리는 즐거움으로 씰룩거렸다. 그는 크롤리의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천사는 나직하고, 거의 친밀하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알 텐데... 저 멍청이들이 이때까지 해왔던 것 보다 훨씬 더 심하게 고통스러울 거야. 알아들었나?”



크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가브리엘의 얼굴을 지나 검을 따라 움직였고, 가브리엘은 그것을 가슴 앞쪽까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가브리엘은 스스럼없이 말을 이었다.

“그냥 자백만 하면 되니까. 네놈과 아지라파엘에 대해 고해. 모든 걸 말이다 – 그럼 난 이걸 쓸 필요도 없을 거다.”

대천사는 칼날로 크롤리의 흉곽 아래쪽을 훑었고, 크롤리는 격렬한 뜨거움에 작지만 날카롭게 쉭쉭거렸다. 가브리엘은 꾸며낸 동정심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약간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한테 달린 거야.”



“전에 말했잖아.” 크롤리가 속삭였고, 고통을 예상하며 숨을 얕게 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하고 냉정하게 가브리엘의 눈을 쳐다보았다.

“자백할게 없어.”



“그래, 알만하군... 속을 것 같나.” 가브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우린 사진이 있다, 크롤리.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안단 말이다. 네놈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입증만 해주면 된다는 거지.”



크롤리는 잠깐 동안 그 말에 대해 생각해봤다 – 그리고 천천히 미소가 그의 얼굴에 퍼져나갔다.



크롤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가 지옥이었다면, 이런 증거가 발견된 것만으로도 자신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을 거다. 이곳 천국에서도, 자신이 악마라는 이유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달랐다.



천국은 자신들의 형제를 처벌하기 위해선 흐릿한 사진 몇 장이 아닌, 더욱 확실한 증거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지라파엘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천사의 범죄를 증명해줄 누군가 말이다.



그들은 크롤리가 아지라파엘의 죄에 대해 증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사실은 커다란 안심이 됐다. 그들은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크롤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간에, 아지라파엘은 안전할 것이다.



“너희 모두 선을 넘었지.”

가브리엘은 여전히 말을 이었다. 자신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었다.

“각자의 편을 배신했지 않나. 왜 자네 혼자만 벌을 받아야 하지? 그냥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말하는 게 어떤가. 모두 털어놔. 그러면...”

가브리엘은 검을 뒤로 약간 물리더니 크롤리에게 밝게 웃어줬다.

“...그러면 풀어주겠다. 우리는 우리 쪽을 처리하고, 그리고... 지옥이 자네를 처리하게 내버려두지. 자네가 충분히 빨리 도망치지 못하는 경우엔 그렇겠지. 하지만 잘 도망칠 거라 믿네. 자네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거야, 크롤리. 어쩌면.”



크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검을 쳐다보았다. 칼날은 크롤리의 얼굴에 매우 가까워졌고, 열기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가브리엘이 다시 부드럽게 제안했다.

“털어놓고 싶은 게 생겼나? 내가 시작하기 전에?”



“좋아, 그래... 그래, 생겼다.”

마침내 크롤리는 동의했고, 약간 숨을 가쁘게 쉬면서 애를 써서 검에서 시선을 돌려 가브리엘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도전적으로 씩 웃었다.



“엿 먹어.”



가브리엘의 미소는 분노로 사라졌고, 그의 턱이 비틀렸으며 눈은 선명하게 타올랐다. 가브리엘의 주먹이 검을 꽉 쥐었고 크롤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대천사는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본인의 반응에 유감스러운 듯 손을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 그럼.” 가브리엘은 참을성 있게, 너그럽게 말했고 크롤리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몸을 약간 뒤로 물리며 악마를 완전히 놔줬다.



그리고 부드럽지만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천사는 검으로 크롤리의 가슴을 가로질러 베어버렸다.




+) 크롤리의 회상 파트는 원문은 이탤릭체로 되어 있으나 가독성을 위해 그냥 별표로 구분했습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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