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픽 번역 백업

Good Omens 영픽 번역 3

Repossession 6

그들은 서점 바닥에 앉은 채 서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며 끌어안았고, 그 상태로 아주 오랫동안 – 아지라파엘의 무릎이 약간 아파오고, 크롤리의 숨소리가 느려지며 울음을 그칠 때까지 – 앉아있었다. 크롤리에게서 느껴지는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감정은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가라앉았다.


“이러면 안 돼...” 안긴 자세 그대로 크롤리가 쉰 목소리로 거칠게 속삭였다.

“너무 위험해, 천사야. 그들은 우리에 대해 알고 있고, 그래서 날 잡아간 거야. 내가 널 배신해서 우리 둘 다 잡길 원하고 있었어.”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지.”

아지라파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크롤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에 대해 슬픔과 경외심을 느꼈다. 천사는 크롤리의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으로 쓸어주며 조금 슬프게 미소 지었다.

“대신 내가 무고하다고 했잖아.”

“그는 안 믿었어.” 크롤리가 급히 말했다.

“노력했는데, 내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고 있더라. 그러니... 그가 너더러 날 데려가게 둔 유일한 이유는...”

“물론 함정일거야.” 아지라파엘은 어두운 얼굴로, 놀라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도 가브리엘이 자신의 청을 들어줬을 때부터 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브리엘의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크롤리를 천국에 두고 오는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나도 알아, my dear.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잖아, 안 그래? 장단을 맞춰주고...그리고 뭘 해야 할지 알아보는 시간을 벌면 된 거야.”

“조심해야 된다니까.” 크롤리는 꿋꿋이 주장했고, 불안함과 긴장이 그에게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좀 더 허리를 펴서 앉았고, 그 바람에 엉망이 된 날개가 움직이자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아지라파엘은 기분이 끔찍해졌다. 친구를 앉혀놓고 고통에 내버려 둘게 아니라, 상처를 먼저 치료했어야 했다. 천사는 날개를 접어 사라지게 하며 말했다. “자, 도와줄게...” 그리고 크롤리의 부러진 날개로 한손을 뻗었다.

크롤리는 몸을 홱 빼냈고 아지라파엘은 잠깐 상처를 받았지만, 크롤리가 즉시 고통에 숨을 몰아쉬며 아지라파엘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듯 손을 올리는 모습을 보자 대신 걱정이 들었다.

“안 돼.” 크롤리의 목소리는 거칠고, 고통으로 떨리고 있었다.

“날 처벌하기로 되어 있잖아, 기억나? 나한테 기적을 낭비하면 안 돼. 날 치료해주면, 그가 알아챌걸.”


당황한 아지라파엘은 반대하기 위해 입을 열었고, 손은 크롤리의 날개로 여전히 향해있었다. 크롤리를 쉽게 치료할 수 있으면서도 친구를 그저 고통 속에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너무나 싫음에도, 크롤리가 옳았고 그걸 깨닫자 천사는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기적이라도 쓸 때마다 천국은 항상 알아차렸지.” 그는 인정했고, 패배감을 느끼며 손을 내렸다. “가브리엘은 내가 딱 그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고. 그렇지?”

크롤리는 아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널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으니까. 네가 말한 대로일걸.”

“이런, 그럼... 네 치료를 좀 더 인간들의 방식에 의존해야겠다.”


아지라파엘은 단념하며 결론을 내렸다. 그는 크롤리를 자세히 살펴봤고, 상처의 정도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악마의 날개는 베인 상처와 화상으로 덮여있었고, 망가지고 탄 깃털들은 비교적 멀쩡한 깃털들과 뭉쳐져 있었으며 어떤 것들은 겨우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다른 곳들은 밑이 완전히 드러나 있었는데, 불에 타 검게 된 살과 뼈이 그대로 보였다. 가브리엘이 발로 짓밟았던 날개는 부러져 있었다. 한 달 전, 그가 서점을 떠날 때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으로 대부분 가려진 크롤리의 몸을 보며 아지라파엘은 다시 찡그렸다. 옷 밑의 가려진 상처들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천사의 시선이 드디어 크롤리의 목에 있는 칼라로 향했고, 칼라는 02 로 맞춰져 있었다. 천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금속의 가장자리를 훑자, 크롤리는 긴장했으나 움직이진 않았다.

“지금 이게 널 아프게 하니?” 아지라파엘이 물었다.

크롤리는 고개를 흔들며 부인하듯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안 아파, 그냥 조금... 머리가 따끔거려... 약간 정전기가 일어나는 것 정도로, 다만...” 그는 시선을 돌리며 목을 힘들게 삼켰다. “...계속 그래.”

아지라파엘은 분노와 의분이 차올랐고, 천사는 부드럽게 칼라를 움직여 조절부분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안 돼,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들어봐, 내가 강도를 유지한 채로 이걸 벗겨버린다고 해도 그들은 아무것도 모를 거야.”

“아니, 아니야, 그건 안 돼!” 크롤리는 몸을 움찔하며 손을 올려 아지라파엘의 손목을 잡아 멈췄다. 목소리에는 공포가 묻어나왔다. 움켜쥔 아지라파엘의 손목을 보는 그의 눈이 커졌고, 크롤리는 즉시 그 손을 놨다. 크롤리는 둘 사이로 손을 들어 올렸고, 그게 자신을 달래기 위함인지, 자신에게 빌기 위함인지 아지라파엘은 확신할 수 없었다. 둘 다일 것이다.

“미-미안,” 크롤리가 불안에 떨며 빠르게 속삭였다.

“미안해, 천사야, 그건...떨어지지 않을 거야. 네가 벗기려고 하면...” 크롤리는 시선을 돌리며 목을 삼켰다.

아지라파엘은 점점 익숙해져가는 하얗고 뜨거운 분노가 쌓임을 느꼈다.

“그게 널 아프게 해?”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이 놓여있던 자신의 팔을 떨어뜨리곤 자신의 배를 감쌌고, 누가 봐도 겁에 질리고 불안해보였다.

아지라파엘은 생각에 잠겨 눈살을 찌푸렸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네가 벗기려고 했을 때 아팠지,” 천사는 크롤리의 말을 차분하게 정정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이 끔찍한 물건을 조정하는 게 누구든지 간에 말이야, 안 그러니? 만약 내가 해본다면-”

“제발 그러지 마.” 크롤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천사야, 그냥...하지 마. 부탁할게.”

크롤리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절박함에 아지라파엘은 벌떡 일어섰고, 빠르게 진정하며 칼라에서 손을 뗐다.

“알았어, 미안해, 얘야, 무섭게 하려던 게 아니었어.” 천사는 차분히 말했다.

“그럼 그냥...가장 단계를 낮춰놓을까? 내가 손대는 게 싫으면 건드리지도 않을게, 네가 직접...”

크롤리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아지라파엘을 불안하게 올려다봤다. “못해.” 그는 아지라파엘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대답했다. “단계를 못 낮춰. 만질 수가 없어.”

“만지면...고통을 주는 거구나.” 아지라파엘은 분노와 싸우며 목소리를 어떻게든 조용하고 차분하게 냈다. 크롤리가 벌써 겁에 질려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맞아.” 크롤리는 풀이 죽은 듯 한번 끄덕이며 속삭였다. “미안.”

“미안할 거 없어, darling.” 아지라파엘은 부드럽게 말하며 크롤리에게 다가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악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리 와, 크롤리, 그래, 그렇지...”

크롤리는 천사의 포옹에 안기며 아지라파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고, 아지라파엘은 친구를 달래줬다.

“단계를 낮춰줄게, 알았지? 고통을 최대한...낮춰줄게.”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목에 부드럽고, 떨리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지라파엘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다이얼을 돌려 01 까지 낮추었다. 크롤리는 머리를 움직이지 않으며 아지라파엘의 곁에 가까이 붙어왔다. 그는 팔을 천사의 허리에 두르고 단단히 안았다. 크롤리의 목울대가 천천히 넘어가더니 쉰 목소리가 속삭였다.


“고마워.”


아지라파엘은 그저 이마에 키스를 해줬다. 천사는 몇 분간 바닥에 앉아 친구가 진정할 수 있도록 안아주며, 자신도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천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이때까지 아지라파엘은 자신들이 나눴던 정신적 교감에 감사했었다. 말하지 않고도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크롤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지 느끼게 해 줌으로써 친구를 안심시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사는 그 행위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고 있었다.

크롤리는 계속해서 움츠러들었고, 겁에 질린 채 떨며 내뱉던 애원들이 떠올랐고, 아지라파엘은 격렬한 분노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크롤리도 자신의 분노를 느낀 게 분명했다 – 반응을 보니 아마 천상의 징벌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천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크롤리의 숨소리가 다시 안정될 때까지 그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악마의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안아주었다. 그 후 아지라파엘은 부드럽게 크롤리를 뒤로 살짝 밀고는, 그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고개를 들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크롤리는 망설이며 말을 따랐고, 아지라파엘은 따뜻하고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어줬다.

“그거야, 사랑하는 크롤리.” 천사는 조용히 말했다. “바닥에서 일어나서 치료를 하자, 괜찮지?”

아지라파엘은 일어서서 바지의 먼지를 살짝 털었고 크롤리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크롤리는 잠깐 올려다보더니 망설이듯 그 손을 잡았고, 아지라파엘이 자신을 일으켜주는 것을 돕도록 내버려뒀다. 크롤리는 일어서자마자 약간 비틀거렸고, 고통의 비명을 이 악물고 참았다.

크롤리가 아픔을 느낄 때마다 계속 그런다는 것을, 아지라파엘은 알 수 있었다.

천사는 크롤리를 부축해주며 눈살을 찌푸렸다. 뜨겁고 어두운 분노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크롤리를 이렇게 잔인하게, 몇 시간씩 고문하면서, 그동안 침묵을 강요했던 거라면...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강렬한 악의에 천사 자신도 깜짝 놀랐다. 아지라파엘은 목을 힘들게 삼켰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생각을 집중했다.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하노라, 라고 신께서 말씀하셨지... 크롤리에게 집중하자, 지금 그에게 뭐가 필요한지... 복수심에나 차 있을 때가 아니야...


“이리 와.” 아지라파엘이 부드럽게 말했다. “위층으로 가자.”

천사는 크롤리의 등쪽 날개 밑에 세고 든든하게 팔을 두른 후 계단을 오르는 것을 도와주며, 서점 위의 어질러진 작은 아파트로 올라갔다. 그는 소파 옆에 멈춰 서서 조심스럽게 팔을 살짝 빼냈고, 크롤리가 완전히 서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몸을 완전히 빼냈다.

“여기서 기다려.” 천사가 지시했다. “금방 올 거야.”

천사는 작은 화장실 싱크대 밑에 구급상자가 있을 거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 하지만 써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진 않았다. 찾던 것을 발견하자 안심이 들었다. 그 후 아지라파엘은 찬장에서 깨끗한 수건 몇 개를 꺼냈고, 부엌으로 가서 그릇에 깨끗하고 따뜻한 물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벽에 매달려있던 막대기를 챙겼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모아들고, 크롤리가 기다리는 거실로 돌아갔다.

크롤리는 소파 옆에 꿇어앉아서, 머리는 팔걸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몸은 잠으로 늘어져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커피테이블 위에 물건들을 내려놓고 크롤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상처투성이의 지친 몸을 보고 있자니 슬픔이 차올랐다. 저번 한 달은 제쳐두고라도, 저번 몇 시간만으로도 크롤리는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아지라파엘은 그를 깨우는 게 싫었지만, 크롤리를 바닥에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근데 왜 바닥에 있는 걸까?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은 걸까? 혹시, 소파에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혹은 앉는 걸 허락받지 못해서일까... 불쾌하고 소름 돋는 생각에 아지라파엘은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세월동안 크롤리는 저기에 앉았고, 저기서 잤어, 편안하게. 여긴 우리 집이니까... 한 달간 천국에 잡혀 있었다고 이렇게 완전히 망가져? 어떻게? 도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지라파엘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크롤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얘야, 크롤리...”

천사는 크롤리가 깜짝 놀랄 거라고 예상했다. 크롤리는 헉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고, 아지라파엘의 시선과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돌렸다.

“미안...” 그는 자세를 바로잡아 앉으며 몸을 움찔했다. “그럴 뜻은 아니었어...”

“자책하지 마, 얘야. 이리 와, 도와줄게.”

아지라파엘은 크롤리가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천사는 크롤리를 옆쪽으로 앉혀 등이 자신 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그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조금 아플 거야, 미안해.”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리며 사과했다. “최대한 안 아프게 할게.”

“괜찮아.” 크롤리는 상체에 팔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아지라파엘이 그의 부러진 날개에 조심스럽게 손을 훑어 내리며 부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정확한 부위를 찾는 동안, 크롤리는 살짝 몸을 떨었다. “해야 되는 일이잖아.”

“내가 그냥 기적으로 치료하면 훨씬 쉬울 텐데도...”

“안 돼.” 크롤리를 발견한 이래로, 아지라파엘이 그에게서 들어온 말 중 가장 힘이 실린 말이었다. 천사는 순간 흥분을 느꼈으나, 크롤리는 몸을 주춤하더니 살며시 고쳐 말했다.

“미안, 그러니까... 조심해야 돼, 천사야. 대천사가 널 함정에 빠뜨리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어. 지금처럼...스스로를 함정에 내던지길 바라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네가 경고해줬지.” 아지라파엘이 칭찬을 담아 친구를 상기시켜줬다. 천사는 한 손으로 애정을 담아 크롤리의 부러지지 않은 날개를 쓸어주었다.

“네가 천사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나한테 알려줬고, 그 덕분에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야. 넌 내 목숨을 구해준거야, 크롤리. 그리고 지금도.”

크롤리는 아무 말도 안 하며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조심스럽게, 망가져 재가 된 깃털들을 뽑아내고 그 밑의 멍든 피부를 씻어줬다. 아지라파엘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마른 피와 재를 닦아냈다. 크롤리의 상처 대부분이 나아가는 중임을 확인하자 천사는 안심이 됐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도 있었다. 그는 그곳에 연고를 발라준 후 부드럽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주며, 침묵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 중 혼란스러움이 찾아왔다.

“나한테 경고를 해줬잖아.” 아지라파엘은 생각에 잠겨 말을 되풀이했다. 크롤리는 고개를 들더니, 듣고 있다는 표시로 아지라파엘 쪽으로 살짝 돌렸다. 아지라파엘은 구급상자를 닫았고, 오래된 부드러운 수건 하나를 찢어서 길고 가는 천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에게 일러바쳤다고 믿었는데도 그런 거야?”

크롤리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날카롭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악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뒷모습만 봐도 수치심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까진 안 믿었으니까.” 크롤리는 나직하고 불확실하게 말했다. 그는 잠깐 말이 없더니 말을 고쳤다. “항상-항상 믿었던 건 아니야.”

아지라파엘은 조금이지만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크롤리가 가브리엘에게 반응하던 모습들이, 그토록 완벽하게 복종을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식으로든 – 고작 한 달이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 가브리엘은 크롤리를 공포에 질리게 해서 완전히 통제할 힘을 얻었던 것이다. 크롤리의 말에 묻어나오는 슬픔과 후회의 비참함에 마음이 누그러졌고, 아지라파엘은 친구의 공허하고 상처입은 목소리에 마음이 아려왔다.

“미안해, 나-나는...뭐가 뭔지 몰랐어...”

“네가 널 배신했다고 믿었구나.” 아지라파엘이 말을 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신중하고 한결같았다. 크롤리는 몸을 움찔했다.

아니야. 안 돼, 이런 식으로는...

아지라파엘은 소파에서 일어나 몸을 옮겨 크롤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눈높이를 맞춰 그를 마주보았다. 천사는 팔을 뻗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던 크롤리의 손을 쥐어 끌어당긴 후 꼭 쥐었다. 아지라파엘의 엄지손가락이 크롤리의 손등을 천천히 쓸며 손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넌 내가 널 배신했다고 생각했지.” 천사는 부드럽게 반복했다. “근데도...넌 날 보호해주다니. 그 과정에서 반항하다가 날개도 부러졌지. 하지만 넌 날 보호해줬어... 나 때문에 잡혀있다고 믿는 와중에도 말이야.”

크롤리는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불안하게 말했다.

“안 믿어, 이젠 아니야, 천사야, 정말이야...”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말을 멈췄다. 천사는 한손을 빼내 친구의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서,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의 시선을 자신의 따뜻함과 경외심이 섞인 시선이랑 마주보게 했다. 천사는 악마의 멍든 뺨을 감쌌다.

“나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이야... 사과는 그만해. 난 너한테 빚을 졌고, 감사하다는 마음뿐이니까. 나 때문에 상처 입는다고 믿으면서도... 날 사랑할 수 있다니.”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는 아지라파엘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고, 눈에 든 근심이 느리게 사라져갔다. 아지라파엘이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다는 듯, 마침내 크롤리가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그의 쉰 목소리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상 사랑하니까, 천사야.” (Always, angel.)


아지라파엘은 심장이 녹는 기분이었다. 천사는 손을 뻗어 크롤리의 머리 뒤쪽을 쓸어주며, 무릎을 세워 앉은 후 크롤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매우 부드럽게, 멍과 핏자국이 없는 입가에 키스를 했다. 크롤리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서 간절하게 키스에 응했으며, 망설이다가 떨리는 손을 들어 아지라파엘의 얼굴을 감쌌다.

“잠깐만, 기다려, 얘야...” 아지라파엘은 숨을 헐떡였다. 천사는 눈을 감고 자신의 욕망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크롤리의 간절함을 애써 억눌렀다.

“네 날개가 부러졌잖아. 치료...치료해야 돼.”

크롤리는 얼굴을 찌푸리고 아지라파엘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그의 입술이 항의하고 싶은 듯 벌어졌다. 천사는 크롤리가 자신과 계속 맞닿은 채 가깝게 있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가 항의하는 이유에는, 천사와 떨어져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인간들의 방법으로 할게.” 아지라파엘이 맹세했다.

“그냥 기적으로 치료해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네 말이 맞아.”

크롤리는 입술을 깨물며 아지라파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못해 몸을 뒤로 뺐다. 아지라파엘도 마지못해 일어나서 크롤리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사는 조심스럽게 크롤리의 멀쩡한 날개를 손으로 훑었다. 아지라파엘의 손길에 크롤리는 몸을 떨었고, 천사는 저도 모르게 애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몸을 숙여 크롤리의 어깨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금방 끝낼 거야, 내 사랑.” 천사가 약속했다. “조금만 참으면 돼.”

크롤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고르지 못하고 숨 가쁘게 대답했다.

“그래...알았어.”

“이건...아플 거야.”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안해.”

크롤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해.” 악마는 자신 앞에 있는 팔걸이에 팔을 얹은 후 팔짱을 꼈고, 몸을 숙여 머리를 파묻었다.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빠르게 해줘.”

“좋아. 알았어.”

아지라파엘은 재빨리 부러진 뼈를 제자리로 끼워 넣었다. 크롤리의 전신이 반사적으로 크게 움찔했고, 그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 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았고, 거의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아지라파엘을 격노하게 만들었고, 분노는 크롤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거 봐, 얘야.” 천사는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됐어. 가장 힘든 걸 끝냈네.”

크롤리는 팔에 고개를 묻은 채 끄덕였으나 몸은 여전히 고통으로 떨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치료를 이어나가며 크롤리에게 나직하게 계속 말을 걸었다. 천사는 부러진 뼈에 막대로 부목을 대주며 뭘 하는지 설명해줬고,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고 찢은 수건으로 만든 끈으로 묶어 고정해줬다. 크롤리는 내내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친구의 몸이 서서히 진정되더니, 숨소리도 고르고 느려짐을 알 수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조용하게 해오던 말을 서서히 멈췄다. 마침내 천사가 치료를 끝냈을 때 크롤리는 잠에 빠진 게 분명해 보였다.

아지라파엘은 고민이 됐다. 크롤리가 그대로 자게 놔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가 겪은 모든 일들 이후 더 고생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롤리, dear...” 천사가 조용히 조심스레 말을 걸며 크롤리의 어깨를 만졌다. 이번에 크롤리는 몸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잠에 취한 채 고개를 들어 아지라파엘의 손에 기댔고,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감사함을 느꼈다.

“돌아봐주겠니?”

크롤리는 말에 따랐고, 움직임은 느렸고 지쳐있었다. 크롤리는 신중히 몸을 돌려 아지라파엘을 바라봤고, 날개를 뒤의 팔걸이에 조심스레 얹었다.

“좋아, 몸은 좀 괜찮아?”

크롤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는 탈진으로 무거웠다.

“아픔은 가시고 있어.” 그의 목소리는 잠 때문에 거칠었다.

“뼈가 맞춰지니까 낫네. 나을 거야, 그냥... 이거 때문에 좀 느릴 뿐이지...” 크롤리는 칼라를 대충 가리켰다.

아지라파엘은 칼라를 노려보았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이 골칫거리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아주 좋아.” 천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크롤리의 심하게 지친 모습을 보면서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

“날개는 해결됐어, 그럼. 이제 다른... 남은 치료를 해야겠다.”

아지라파엘은 미안함에 살짝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자기 전에 치료를 끝내는 게 좋겠어. 셔츠 좀 벗어볼래, dear?”

크롤리가 얼어붙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아지라파엘의 허리 근처만 바라봤다.

“볼 것도 없어.” 크롤리가 우겼다.

“거의... 그는 거의 내 날개에만 집착해서...”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크롤리가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냥 한번 보기만 해도 안 돼? 괜찮은지 보기만 해도?”

“제발.” 크롤리의 목소리는 낮고 나직했으나, 급박했으며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나-나 그냥 쉬면 안 돼? 제발...오늘밤만은 하지 말자, 천사야, 부탁할게, 응?”

아지라파엘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물론이지, 얘야.”

그는 승낙하며 크롤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친구의 허리에 팔을 미끄러지듯 둘렀다.

“부탁하지 않아도 돼. 난 그냥 널 돕고 싶어.”

크롤리는 눈에 띄게 안심하더니, 그만 참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지라파엘이 그 모습을 본 동시에 크롤리는 몸을 앞으로 숙여 천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 그가 속삭였다.

“고마워 할 게 뭐있어.” 아지라파엘은 친구를 달래며, 한손을 올려 크롤리의 뒤통수에 얹었고 다른 한 팔은 조심스럽게 친구를 감싸 안았다.

“다 잘 될 거야. 무슨 문제가 남았든, 아침에 해결하면 되니까.”

크롤리는 고개를 들어 괴로운 눈으로 아지라파엘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악마의 입술이 벌어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아지라파엘의 옆쪽을 그러쥐곤 가까이 당겼다. 크롤리는 어깨를 떨더니 눈물을 흘렸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텅 빈 듯한, 공허한 아픔이 아지라파엘의 명치를 찔러왔다. 자신이 모르는 많은 일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많았다. 크롤리의 속도에 맞춰서, 그가 준비가 될 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대, 반쯤은 앉고 반쯤은 누워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크롤리를 아래로 끌어당겨서 자신의 가슴 위에 기대게 했다. 천사는 잠깐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튕겨서 침실의 부드러운 담요를 기적으로 거실까지 가져왔다. 그리고 둘 위에 편안하게 덮었다.

아지라파엘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적을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가브리엘은 알 길이 없을 거였다.

“이제 괜찮아.” 천사는 조용히 달래며 말했다. 그는 손으로 크롤리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규칙적으로 쓸어줬다. “이제 쉬렴, 내 아이야. 이제 안전해... 이제 울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이제 다 괜찮을 거야...”

크롤리는 천천히 진정하더니, 지쳤는지 울음을 그친 채 마침내 잠에 빠져들었다. 아지라파엘 또한 오랜 존재기간 동안 처음으로 지쳐있었다. 잠을 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아주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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