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픽 번역 백업

Good Omens 영픽 번역 3

Repossession 5

“제발...부탁이야, 하지 말아줘...”


크롤리의 말소리는 단어마다 갈라졌고, 비참했으며, 희망 없이 자비를 빌고 있었다. 그는 말을 꺼낸 걸로 벌을 받을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움찔했다. 크롤리가 허락 없이 말했을 때 가브리엘의 반응을 보면, 놀랍지도 않았다 – 크롤리가 조용히 흐느끼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가 가브리엘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천사는 어쩌면 크롤리가, 아지라파엘이 그를 해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아지라파엘의 심장을 산산조각냈다.


내가 건드렸을 때, 그는 몸을 주춤거렸어... 무서운 척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지라파엘은 그때를 떠올렸으나, 크롤리가 당연히 장단에 맞춰주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자신이 크롤리와 함께 떠나도록 가브리엘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크롤리는 자신과 함께 가는 것이 기쁘다고 드러내면 안 되니까. 안 그런가? 아지라파엘의 손길에 무서워했던 건 연기였어야 했다, 아니었던가? 아지라파엘의 잔인한 말과 거짓위협에 상처받는 척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았던가?

조심스럽게,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크롤리는 몸을 움츠렸고,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가슴에 칼이 박히는 느낌이었다.


“진정하렴, dear, 이제 다 괜찮아.” 천사는 중얼거리며 크롤리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았다. 겁에 질리고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해주기 위해 다가가듯, 천사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괜찮아, 크롤리... 부탁할게, 내 사랑, 보기만 하자...


크롤리는 얼굴을 보호하던 팔을 내렸다 – 희망적인 신호여야 했다. 주먹이 날아오지 않으리라 여기는 거고, 그래서 더 이상 방어하지 않는 거니까. 하지만 다음 모습에 아지라파엘의 심장이 철렁했다. 크롤리는 팔로 갈비뼈 부근을 감싸며 움츠러들었고, 고개를 저으며 거의 들리지도 않게 속삭였는데, 쉭쉭대는 소리가 섞여있었다. 그가 화났거나, 지쳤거나...혹은 무서울 때 내는 소리였다. 그는 죽을 정도로 무서워하고 있었다.


“제발...제발...부탁이야...”

“부탁이라니?” 아지라파엘이 부드럽지만 슬프게 물었고, 위협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손바닥을 보인 채 팔을 내밀고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갔다.

“무슨 부탁이야, 얘야?” 크롤리는 말을 하지 않았고, 천사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다시 조용히 물었다. “말해줘, 크롤리. 뭐가 필요한 거니?”

“용서해줘.” 크롤리가 간신히 말했다.

“그-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맹세할게, 천사야, 미-미안해. 저-절대 원한 적 없어, 정말, 정말 미안해...”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렸다. 크롤리의 두서없고, 갈수록 이상해지는 말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용서할 것도 없어, my dear, 잘못한 게 없잖아.”

“나 때문에 타락할 뻔 했잖아.” 크롤리의 목소리는 좌절과, 혐오감이 느껴지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 게 내가 하는 일이지, 안 그래? 난 사기꾼에다가 유혹자고, 널 거의 망가뜨릴 뻔했어, 하지만 정말 그걸 원한 게 아니었어, 단 한번도. 내가 뭐라 지껄였던지 간에 말이야.”

그가 머리를 숙이며 눈을 감았고, 눈물이 다시 크롤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벌 받을 짓이었다는 거 나도 알아, 다 내 잘못이야... 넌 날 벌할 모든 자격이 있다는 거 알아, 천사야, 하지만 제발... 제발 그러지 마...”

목소리가 갈라졌고, 그는 나머지 말을 쉰 목소리로, 거의 알아들을 수도 없게 속삭였다.

“네가 그런다면...나-난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마지막 단어 몇 개로, 아지라파엘은 마침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갑자기 이해가 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사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크롤리가 뭘 무서워하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이 아까 전 하겠다고 말한 것들을 그대로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급하고 간절하게 크롤리가 진심을 알길 바라면서,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최소한 작게 보이는 자세로 앉았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한손을 뻗어, 옆구리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던 크롤리의 손을 잡았다. 천사는 나머지 한손으로 크롤리의 뺨을 감쌌고, 크롤리는 움찔했지만 아지라파엘이 자신의 고개를 조금 기울이도록 놔뒀다.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찡그렸다.

크롤리는 순순히 몸을 맡겼고, 아지라파엘이 그의 손과 얼굴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동안 약간의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입이 마르고 속도 살짝 안 좋아졌으며, 천사는 힘들게 침을 삼켰다. 크롤리를 만지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 하지만 크롤리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나 좀 봐봐, 크롤리.” 천사는 가라앉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크롤리는 즉시 복종했으며, 악마의 눈에 있는 고통과 두려움은 아지라파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지라파엘은 눈을 마주치며,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크롤리가 자신의 진심을 눈으로 보길 바랐고, 마음으로 느끼길 바랐다.


“널 절대 아프게 안 할 거야.” 아지라파엘이 맹세했다.

“알겠어? 절대 안 그럴 거야.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건, 단지 널 데려오기 위해서였어. 널 거기서 빼내야 했으니까...너를 집에 데려와야 했으니까. 널 구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my love, 하지만 절대 진심이 아니었어. 아프게 안 할게, 크롤리. 안 그럴 거야. 정말이야.”

크롤리의 눈에는 당황스러움과 공포심이 싸우고 있었다. 악마는 주저하며 한동안 아래를 내려다봤으나 전보다 훨씬 침착했다. 아지라파엘은 그 모습에 약간의 성취감을 느꼈다. 크롤리는 천천히 침을 삼켰고, 천사를 다시 올려다보며 조용히 결론지었다.

“거-거짓말했구나. 대천사한테.”


아지라파엘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고 약간 찡그렸다. 크롤리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줄은...

“그래, 그랬던 거 같네.” 천사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다른 방법이 없었어, my dear.” 천사의 찡그림이 깊어졌고, 이어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있었다.

“어쨌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성스럽다고 할 수 없잖아, 아냐? 신께서 그런 행동을 용서하셨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천사의 괴로운 생각들이 천천히 입술로 흘러나왔고, 말을 머뭇거렸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그분이 그러셨다면...나-난 이해가...”

“넌 타락할거야.”

크롤리의 조용하고 절망이 담긴 목소리에 아지라파엘은 생각을 멈췄다.

“뭐라고?” 천사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속삭이듯 되물었다.

“타락할 거라고.” 크롤리가 슬픔에 잠겨 다시 속삭였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망친거야. 네 영혼을 나의...더러움으로 물들인 거잖아.”


분노가 빠르게 아지라파엘의 공포를 압도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왜 천국이 정도를 넘어가면서까지 크롤리를 납치해서 이렇게까지 상처를 줬는지, 천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취급을 한 달 동안 받았다고 한들, 어떻게 크롤리가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져버릴 수 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지라파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의 집에서 그는 안전할 거라는 사실도, 크롤리는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천사는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크롤리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했어?”

아지라파엘의 목소리에 담긴 분노에 크롤리가 움츠러들자, 천사는 얼른 분노를 누르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거짓말이야, 크롤리. 나 좀 봐.”

크롤리가 말에 따랐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감정이 드러나는 눈은 슬픔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말들은 증오에 찬, 사악한 거짓말일 뿐이야. 넌 날 어떤 식으로든 해친 적이 없고, 네가 절대 그러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어. 네가 원한다고 해도, 나한테 강요할 수도 없고. 내 선택은 내 몫이고, 그 책임은 온전히 내거야. 내가 타락한다면, 그건 내 선택이야. 네 잘못이 아니고, 얘야,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난 널 사랑해. 이건 유혹도 아니고, 어떤...어둡거나, 비밀이거나, 부끄러운 일도 아니야. 사랑해. 난 항상 널 사랑해왔어...그리고 지금 난 그대로잖아. 사랑은 죄가 아니야... 그냥 사랑일 뿐이니까.”

천사는 말을 잠깐 멈추고, 최대한 설득을 담아 맹세했다. “난 타락하지 않아, 크롤리.”

크롤리는 아무 말도 없이, 둘이 맞잡은 손이 놓인 바닥만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훨씬 침착해 보였다. 눈물도 멈춘 것 같았다. 이전까진 흐느끼며 격렬하게 몸을 떨었으나, 이제 지쳐서 살짝 몸서리치는 정도로 진정되어 있었다. 그는 느리게 목을 삼켰고 아지라파엘의 말을 받아들이며 눈을 깜빡였다. 크롤리의 엄지손가락이 아지라파엘 손목 안쪽을 따라 주저하듯 움직였고, 아지라파엘의 심장은 심하게 아팠다.

천사의 명치에 무거운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끝나기에는 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들도 우리에 대해 알고 있구나, 맞지?” 아지라파엘은 단념과 함께 결론지었다.

크롤리는 아무 말도 안 했으나, 그의 눈은 아지라파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아래를 바라보며, 천천히 목을 삼켰다.

“그래서 네가 날 유혹했다고 말했던 거구나. 날 보호해주려고.”


크롤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일을 견뎠는지 생각하자, 아지라파엘은 감사함과 슬픔으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여전히 떨고 있는 크롤리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들어 손가락 마디에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

“사랑하는 크롤리, 그런 일을 겪으면 안 됐는데...그 정도의 짐을 짊어지면 안 됐는데...”

절망이 차올랐고, 천사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정말 조심했었잖아! 어떻게 알아챈 거지?”

크롤리의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벌어졌고, 그의 시선은 아주 잠깐 눈을 마주치곤 잡은 손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입을 닫고 천천히 목을 삼켰다. 아지라파엘은 재촉하지 않았고, 드디어 크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조심스럽게 침착하고 조용했다.

“너-네가 말한 게 아니었구나.”

그 말에 아지라파엘은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아연해진 기분으로 크롤리를 바라보았고, 목소리를 조절하는 것도 잊은 채 대답했다.

“내가, 그들한테 말했다고? 그 작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천사는 겁에 질린 크롤리에 대한 걱정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천사가 그를 발견한 이후 처음으로, 크롤리는 그의 눈을 바로 마주보았다 – 확고하게, 움츠리지도 않으며, 아지라파엘의 표정에서 애타게 대답을 찾고 있었다.

“크롤리, 당연히 아니야! 그런 적 없어. 절대로...”

천사의 말은 끊겨버렸다...크롤리가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다시 무너져 내리며, 목 안에서부터 깊고 고통스럽게 흐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눈물은 깊은 안도감 때문이었다.

“미안해.” 크롤리가 헐떡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알아차렸어야 했어... 믿지 말아야 했는데...”

그는 말을 이을 만큼 충분히 숨을 들이쉬지 못했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의 손을 더 단단히 잡더니 천사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제발...부탁이야, 천사야, 나-나는 네가 필요해...”


크롤리가 필요한 것은 정확히 아지라파엘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크롤리를 본 순간부터 간절히 원하던 것이었다. 단지 때를 잡지 못해 참아왔던 거였다.

아지라파엘은 간절히, 그리고 기꺼이 거리를 좁혀서, 크롤리를 팔로 감싸고 가슴 안으로 끌어당겼다. 천사가 느꼈던 끔찍한 불안감이 없어지면서 그의 몸이 떨렸고,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에게 매달려 그의 허리와 어깨를 꽉 움켜쥐고는, 천사의 목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제 됐어.” 아지라파엘이 속삭이며 한 손을 들어 올려 크롤리의 머리를 흔들어 달랬고, 천사 자신의 눈도 눈물로 뜨거웠다.

“널 찾았으니까, my love, 이제 안전해. 넌 이제 안전해...”

그 말이 딱히 사실이 아님을 천사도 알고 있었다, 아직은 안전하지 않았고, 그들은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천사는 크롤리를 영원히 못 볼까봐, 혹은 악마가 죽었을까봐 두려워해왔다. 그리고 크롤리는 여기, 아지라파엘의 품에 안긴 채 있었다. 그를 사랑하면서, 그를 믿으면서... 그 순간만으로도 아지라파엘은 그저 감사함을 느꼈다.


천사는 눈을 감고, 그들이 나누던 정신적 연결을 시도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밖에 지나가는 어떤 천사나 악마도 알아챌 수 없을 테니까. 아지라파엘은 집중해서 크롤리를 사랑의 따스함으로 감싸 안았으며, 그 순간 중요한 것은 오직 그와 크롤리뿐이었다. 크롤리는 헐떡이면서 아지라파엘을 더욱 꽉 잡으며, 천사에게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천사는 크롤리가 자신의 사랑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사랑 또한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며 둘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크롤리의 감정은 뜨겁고 빠르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의 감정에는 공포와 혼돈, 그리고 고통이, 너무나 많은 고통이 섞여 있었다.

깊게 새겨진 보호 본능으로, 아지라파엘은 날개를 꺼내 방을 거의 채울 정도로 펼쳤다. 그는 자신과 크롤리 주위로 날개를 당긴 후, 상처 입은 악마와 자신을 감쌌다. 순백의 깃털이 검게 타 버려 망가진 크롤리의 날개에 부드럽게 스쳤고, 크롤리는 날카롭게 흐느끼며 아지라파엘의 목에 대고 숨을 헐떡였다.


힘드니?


아지라파엘은 연결을 통해 생각을 보냈고, 크롤리의 축축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그의 머리 옆쪽에 입을 맞췄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에게 매달리며, 천사의 어깨에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안 힘들어, 딱 좋아. 그리웠어, 천사야, 너무 오랫동안 보고 싶었어...


슬픔에 잠긴 고백에, 자신이 찾지 못하는 동안 겪었을 크롤리의 고통에 아지라파엘의 심장이 견딜 수 없게 아파왔다.


네 옆엔 내가 있어, 난 여기 있을 거야.

아지라파엘이 맹세했다.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맹세였다.


이제 내가 있고, 난 네 옆에 있고, 누구도 다시 널 다치게 할 순 없어, 사랑하는 크롤리...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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