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픽 번역 백업

Good Omens 영픽번역 3

Repossession 4

크롤리의 몸은 지난 몇 주간 가해진 무자비한 상처들로 덮여있었고, 아지라파엘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악마는 양손이 등 뒤에 수갑으로 단단히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목에는 은색의 칼라가 채워져 있었고, 아지라파엘은 그것이 악마가 기적을 행할 수 없도록 힘을 가둬두는 용도일 거라 짐작했다. 그의 날개는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아지라파엘은 날개가 얼마나 철저히 결박되었는지를 깨닫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금속 고리는 크롤리의 날개 관절에 단단히 박혀있었고, 고리에는 매우 짧은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사슬은 날개를 바닥 쪽으로 낮고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고, 얼마나 낮던지 크롤리는 무릎이 꿇린 자세에서 몸을 세울 수조차 없었다.


사실 아지라파엘은 전에도 인간들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인간성을 목격하면서 분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크롤리의 힘없는 날개에 나있는 수많은 상처를 보자, 천사의 가슴 안에서 어두운 열기가 점점 솟아올랐다. 날개는 제각각으로 낫는 중인 베인 상처와 화상으로 덮여있었다. 검은 광택의 깃털이 타버리고 재가 된 채 뼈가 드러난 곳들도 여기저기였다.


크롤리가 악마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천사라는 자들이 생명체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사실은 아지라파엘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런 격분도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크롤리는 아직 천사를 올려다보지 않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이 방에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선글라스는 사라지고 없었고, 그 모습은 아지라파엘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당연히 그들은 제일 먼저 선글라스를 빼앗았을 것이다. 최소한의 방어도 빼앗긴 채 적들에게 둘러싸였으니, 크롤리는 당연히 싫어했을 테지.

크롤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아지라파엘은 눈 주위와 뺨에 든 멍들, 그의 아랫입술에 나있는 작은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뻔했다 – 당연히 크롤리는 조용히 있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악마는 독설을 퍼부으면서 사람들을 열 받게 하는 데 선수였다. 그는 자기 몸을 지키려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지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굴곤 했다. 하지만 어떤 천사인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묶인 채 무력하게 있는 크롤리의 입에 주먹을 날렸다는 생각에 아지라파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아직 자신은 충동을 자제해야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5명의 천사로 둘러싸여 있는 이 상황에서 싸운다면 자신이 질 것이다. 크롤리도 구할 수 없을 거다.

다신 크롤리를 못 보게 될 것이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와 함께 이곳을 나가는 것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었다. 조금의 기회라도 잡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기간 중 최고의 연기를 하면서 악마를 신경 쓰지 않는 척 해야 했다.


“보이나?” 가브리엘이 기쁜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보이다시피 자네의 골칫거리를 처리했다네. 감사인사는 넣어두게.”

아지라파엘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부드럽고 침착하게 말했다.

“음, 요즘 잠잠했던 이유가 다 있었군요.”


그가 말을 꺼낸 순간, 크롤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악마는 놀란 표정으로 아지라파엘을 올려다봤다. 아지라파엘은 잠깐 크롤리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그는 악마의 눈에서 절박함을 볼 수 있었고, 공기 중에 퍼지는 공포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크롤리에게 달려가 치료해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이게 마지막 만남인 걸 바라지 않는 이상,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아지라파엘은 억지로 크롤리의 시선을 피하며 가브리엘을 향해 싸늘하게 웃어보였다.

“저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어쩐지 요즘 죄를 좀 안 짓는다 싶었거든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고?” 가브리엘이 씩 웃었다.

“어디 보자, 좀 재밌는 일들이 있었지. 저놈이 알려준 바로는...”


“먹혀들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크롤리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쉬어서 떨리고 있었고, 악마의 시선은 잠깐 가브리엘 쪽을 향하더니 절박하게 아지라파엘의 눈을 향했다. 말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유혹은 내 전문이잖아. 네까짓 게 빌어먹게 고상한 척 굴지만 않았어도... 여기 작자들은 그래도 머리 굴리는 것만큼은 너보다 훨씬 낫더군, 이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사 같으니...”


가브리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고 미소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천사는 빠르게 크롤리에게 다가가 악마의 오른쪽 날개를 발로 세게 내려찍었다. 크롤리의 입술사이로 목이 메이는 비명이 터져 나왔으나, 가브리엘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뒤로 세게 젖히자 비명은 바로 끊겨버렸다.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이 발뒤꿈치로 크롤리의 날개를 잔인하게 짓밟으며 몸을 숙여 악마의 귀에 대고 뭐라 속삭이는 모습을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보았다.


아지라파엘에겐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크롤리는 완전히 조용해졌다. 크롤리의 몸은 눈에 띄게 떨렸으며, 그는 고개를 조금 저으면서 얼굴을 앞으로 숙였고,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을 이 악물며 참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크롤리가 전혀 반항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크롤리는 몸을 뒤로 빼지도 않았고, 모욕이나 위협 같은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악마를 붙잡고 그의 귀에 독을 흘려 넣고 있는 중이었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에게서 압도적인 순수한 공포심 외에는, 이 잔인한 대우에 대한 약간의 분노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을 저지하고 싶었다. 싸워서 대천사를 끌어내고 싶었고, 어떤 일이라도 해서 크롤리에게 가해지는 모든 학대를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었다. 대신 그는 크롤리가 추가적인 고통으로 값을 치르고 있는, 악마의 다급했던 말에 집중했다.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크롤리는 가브리엘과 다른 천사들에게, 자신이 아지라파엘을 유혹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한 것이다. 아지라파엘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모든 책임을 덮어쓴 크롤리를 생각하자, 깊은 죄책감에 천사의 심장이 아파왔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그는 크롤리의 희생을 이용해서 악마를 이곳에서 빼내야 했다.


먼저...그는 가브리엘의 관심이 크롤리에게서 자신에게 오도록 해야 했다.


“정말이지,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가능한 한 목소리에 경멸을 가득 담아 비웃으며 말했고, 가브리엘이 일어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릴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너 같은 건 언제나 너무 알기 쉬웠거든.” 그는 억지로 차갑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거랑 단지 재미가 없는 거랑은 구분해야지.”


가브리엘은 크롤리를 놓아주고, 날개에서 발을 떼고 아지라파엘에게로 걸어왔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가 자신의 말에 조금 움찔하는 모습이 아닌, 방금 거둔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저 자가 자네를 유혹해서 타락시키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가브리엘은 놀란 것 같았다. 대천사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건조하고 의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가.”


“전혀 유혹을 못 느꼈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지라파엘은 어깨를 으쓱하고 한숨을 쉬며, 크롤리 쪽으로 손을 저었다.

“저한테 말씀이라도 하시지 그랬습니까. 저놈이 어떤 끔찍한 일이라도 꾸미는 건가 불안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얌전한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여기 와있었다니, 제 걱정은 쓸모없는 걱정이었군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자신의 말이 전달되길 기다렸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 쪽으로 느리게 몇 걸음 다가갔다.

“지상은 저의 관할구역이지요. 이 더러운 것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면...그건 제 책임일 것입니다.”

“그러길 원하나?” 가브리엘은 잘못 듣기라도 한 듯, 놀란 표정으로 아지라파엘을 뜯어보았다. “자네 손으로...처벌을 하고 싶다고?"

“오, 물론입니다.”

아지라파엘은 조용히 말하며 크롤리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는 악마의 망가진 날개에 손대지 않게 조심하며 크롤리의 얼굴 옆쪽을 쓸어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크롤리는 몸을 뒤로 홱 빼냈고, 숨이 거칠어졌으며 눈을 크게 뜬 채 바닥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괜찮아, 좋아, 얘야, 그가 믿을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는 혼자 생각밖엔 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크롤리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순간 가브리엘을 비롯한 다른 천사들에게도 들릴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아지라파엘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낮고 살짝 조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지도 않은 연인놀이에... 한심한 ‘연애감정’ 같은 것들이라니... 내가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나, 너 따위한테? 네놈이 딴 짓을 못하게 참아준 거다. 넌 그 역겨운 관심을 나한테 쏟으면서... 진짜 의무는 내팽개치곤 했으니까 말이야.”


아지라파엘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너 같은 것에게 느끼는 진짜 감정을 지금이라도 알릴 기회가 생긴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크롤리. 진심이야.”


“직접 처벌하고 싶다고?”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대천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아지라파엘을 보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일어나 가브리엘과 악마 사이를 막아주며 크롤리를 등지고 섰다.


“그렇습니다.” 아지라파엘이 대답했다.

“그래야 공평한 것 같으니까요. 전 수 백년에 걸쳐 크롤리를 상대해 왔습니다. 그의 더러운 속임수와 사악한 유혹에 가장 고통 받은 것은 접니다. 그는 제 권한 하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의 숙적이지요. 말씀드렸다시피, 요즘...조용했거든요. 평화로웠고요. 이제 이유를 알겠네요.” 그는 가브리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브리엘이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차가운 분노를 알아채길 바랐고, 그 분노가 크롤리를 향한 거라고 믿길 바랐다.

“그를 데려가서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조용함과 평화가 지속될 것을 약속드리지요.”


가브리엘은 그 말을 고려하면서 머리를 살짝 기울였다.

“자네는 이런 일을 해본적이 없지 않나, 아지라파엘.”

“경험을 좀 더 해봐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아지라파엘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어디든지 간에, 이 자는 묶여 있습니다... 뭔가 경험을 해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군요.”

“음...안될 게 뭐가 있나?”

가브리엘이 마침내 동의했다.

“시도를 한번 해볼 수 있겠군. 자네가 한 말 중 이거 하나는 맞네, 아지라파엘. 그는 자네의 권한이야. 자네에게 그를 처벌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말이지.”

대천사는 미소를 짓고 아지라파엘의 어깨를 탁 쳤다.

“그리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모두 누려야 하고 말이네.”


**


당연히 엄청난 서류작업이 필요했다.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이 공기 중에서 기적으로 만들어낸 하얀 책상에 앉아 열심히 서류를 작성했다. 다른 천사들이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뭐라 속삭이면서, 가끔씩 그를 향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것을 곁눈질로 볼 수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자신이 소환했던 악마와의 대화를 불편한 마음으로 떠올렸다. 그와 크롤리에 대한 소문이 지옥에 퍼졌다면, 천국에도 당연히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천사들이 크롤리를 끌고 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크롤리는 자신이 아지라파엘을 유혹했다고 자백하는 게 최선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는 크롤리와의 관계에서 의심을 받고 있었다. 마침내 아지라파엘은 불편한 결론을 내렸다.


가브리엘이 자신과 크롤리를 실제로 믿을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나중이었다. 지금은 크롤리를 집으로 데려가는데 집중해야 했다. 나머지는 크롤리가 안전해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크롤리는 새하얀 바닥에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고통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방 안의 천사들은 그런 악마를 무시하고 있었고, 아지라파엘은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그의 날개는 계속해서 경련하며 사슬에 부딪히고 있었고, 크롤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자 아지라파엘의 마음이 아파왔다. 가브리엘이 크롤리의 날개를 짓밟을 때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었다.

두 천사가 양쪽에서 크롤리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날개를 바닥에 고정시키던 사슬을 풀어주기만 했다. 즉시 크롤리는 날개를 몸 가까이로 붙였다. 그는 일어나지도, 자세를 바로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아래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최대한 작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냥감처럼.

가브리엘이 크롤리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다가가는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긴장이 됐다. 그는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서류에만 집중하려고 애를 썼고, 가브리엘은 크롤리의 목을 감싼 칼라를 잡아 악마를 일으켜 세웠다. 크롤리는 순종적이고 얌전하게, 가브리엘이 원하는 대로 허겁지겁 복종했다. 가브리엘은 악마의 몸을 돌려세운 후 얼굴을 벽에 세게 박아버렸다.

크롤리는 싸우지도, 가브리엘을 모욕하거나 저주하지도 않았다. 아지라파엘이 악마를 데려가도록 허락하는 것에 대해 가브리엘이 마음을 바꿀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 아지라파엘은 혹시라도, 제발 크롤리가 연기를 하고 있기만을 바랐다.

아지라파엘과 마찬가지로, 집에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크롤리의 뒤에서 가까이 다가가, 악마의 목 뒤에 무겁게 손을 얹고 아지라파엘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게 뭐라 말하는 순간, 아지라파엘은 크롤리의 순수한 공포심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크롤리는 진심으로 가브리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당황스러웠고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이 특별히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 위협적이긴 했다. 하지만 답답하고 관료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그랬다는 거지 실제로 자신에게 위협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가브리엘은 크롤리를 쥐고 흔들며 권력을 즐기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안 보는 척 하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브리엘은 천천히 크롤리의 등 한가운데까지 손을 미끄러뜨렸고, 크롤리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그 원인이 가브리엘의 말 때문인지, 손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의 손은 크롤리의 구속된 손목에서 멈추더니, 수갑을 풀어주곤 손을 튕겨 그것을 사라지게 했다. 대천사는 크롤리에게 다시 뭔가 속삭였고, 크롤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사는 다시 칼라를 잡고는 크롤리를 방으로 거칠게 끌고 와 아지라파엘 앞에 세웠다. 아지라파엘은 마지막 서류에 사인을 막 끝낸 참이었다.


아지라파엘은 용기내서 크롤리를 쳐다보았고, 크롤리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하자 심장이 고통스럽게 조여들었다. 가브리엘은 악마를 보지도 않은 채 칼라를 잡고 거칠게 위로 잡아당겼다. “그만.” 대천사가 날카롭게 명령했다.

크롤리는 몸을 움찔했으나 비참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일어섰으며, 불안한 듯 쓰라린 손목을 문질렀다. 그의 날개는 등 뒤의 바닥에 끌리고 있었고, 온몸을 떨고 있어서 날개가 사락거렸다. 크롤리의 눈은 아지라파엘 밑의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그가 자신을 보길 원했다.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 하지만 자신들만 남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아지라파엘은 크롤리가 지금 자신의 눈을 쳐다본다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작동방법을 보여주도록 하지...”

가브리엘이 말하고 있었고, 아지라파엘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가브리엘은 칼라를 다시 잡고는 크롤리를 아지라파엘 가까이로 끌어당겼고, 그 덕분에 아지라파엘은 칼라의 가장자리를 더욱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크롤리는 매우 조용하고 얌전하게 서 있었으나, 눈을 꼭 감은 채 공포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빠르고 고르지 않은 숨소리를 냈으며, 조용히 있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술을 꽉 깨문 나머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기 이걸로 설정을 컨트롤 할 수 있다네, 높일 때나 낮출 때나...”

가브리엘은 05 라고 적힌 작은 디지털화면 바로 옆에 있는, 칼라의 바깥쪽 가장자리의 다이얼을 가리켰다. “아니면 이걸 쓸 수도 있고.” 가브리엘은 칼라를 놓고 크롤리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내, 아지라파엘이 볼 수 있도록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중간 단계로 설정되어 있네... 저놈을 착하고 조용히 만들어주지. 대부분은.”

아지라파엘은 대천사의 어둡고 비난이 섞인 어조를 놓치지 않았다. 크롤리가 몸을 떨며 어깨를 모아 양팔로 상체를 감쌌다. 누가 봐도 더 심한 고통에 준비하는 자세였다.

가브리엘이 차갑고 보복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저놈이 멍청하게 입을 계속 놀린다면, 교훈을 줘야 하겠지...”

가브리엘은 갑자기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고, 세 단계가 연이어 올라가며 디지털 화면의 숫자가 08 에 도달할 때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공포에 질렸다. 크롤리의 다리가 꺾이며 그는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악마의 온몸이 괴로움으로 움츠러들었다. 그의 전신을 뒤흔드는 명백한 고통 속에서도, 크롤리는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흐느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의 손에서 그것을 잡아채고 싶었고, 크롤리의 목에서 칼라를 찢어버린 후 그를 보살펴주고, 치료해주고 싶었다.

그는 가브리엘을 죽이고 싶었다. 그의 모든 존재기간 중 다른 누군가를 죽이길 원했던 적이 기억도 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진심으로 가브리엘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무표정을 유지하며, 발밑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악마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그저 눈썹 한쪽을 올린 채 크롤리를 내려다봤다.


“10 이 가장 높은 단계야.” 가브리엘이 설명했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 너무 오래 두지는 말게. 분리될 테니까.”

아지라파엘은 속이 안 좋아졌다. 가브리엘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망설였으나, 결심하곤 질문했다.

“오래라면...얼마나 오래입니까?”

가브리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천사의 차가운 시선은 발밑에서 떨고 있는 크롤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몇 시간. 두 시간은 괜찮아, 그건 확실하지. 그 후로는 장담할 수가 없군. 저놈이 지옥으로 돌아가 버리면, 우리는 그를 잃어버리는 셈이고 다신 찾을 수 없겠지.”

두 시간. 그건 크롤리가 이 정도의 고통을, 혹은 더 심한 고통을 적어도 두 시간은 겪은 적이 있다는 의미였다. 아지라파엘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온힘을 다해야 했다. 하지만 분노가 가슴을 휘감았고,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읽을 설명서 같은 것은 없습니까? 굳이 다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있지.”

가브리엘이 손가락을 탁 튕기자 얇고 하얀 책이 손에 나타났다. 대천사는 아지라파엘에게 책을 건네주었고, 아지라파엘은 재킷 안쪽 주머니에 그것을 넣었다.


집에 가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이 지독한 물건을 떼어버리는 방법이었다.


“이건...계속 차야 하는 겁니까?”

아지라파엘은 불만을 표하듯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크롤리는 계속해서 몸을 떨며, 온몸이 타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공포를 느꼈다.

“그래.” 가브리엘이 씩 웃으며 발로 크롤리를 쿡 찔렀다.

“단계를 낮출 수는 있네. 가장 낮은 단계라면 그는 거의 느끼지도 못할 거야. 중간 단계는 말하자면... 계속해서 경고를 주는 거지. ‘어이, 이건 좆같지만, 한번만 더 일을 망치면 훨씬 더 좆같아질 거란 사실 명심해라’ 정도의 고통이라고 하면 되겠군. 안 그런가, 크롤리?”

크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전신을 장악한 괴로움 속에서 가브리엘의 말을 듣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가브리엘은 전혀 동정심이 없었다. 대천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그는 크롤리의 목을 한 손으로 세게 잡고는 자신 쪽으로 기울였다.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크롤리는 눈을 감고 헉헉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눈물이 속눈썹을 빠져나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잘못했습니다. 죄...죄송합니다..."

가브리엘은 거칠게 악마를 밀어냈다. 크롤리는 무릎 쪽으로 얼굴을 숙인 채 어깨를 떨며 소리 없이 흐느꼈다.


“네, 좋아요.” 아지라파엘은 대천사가 자신의 표정을 볼까봐 가브리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었다.

“그가 혼자서 걸을 수는 있게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알겠네.”

가브리엘은 동의하듯 끄덕였고, 05 로 낮춰 설정하려면 리모컨의 어느 버튼을 눌러야 되는지 아지라파엘에게 보여줬다. 그는 아지라파엘의 손바닥에 리모컨을 올려주더니 크롤리 앞에 쭈그리고 앉았으며, 그 모습에 아지라파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천사는 크롤리의 턱을 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고, 크롤리는 순종했으나 시선은 조심스럽게 아래를 향한 상태였다. 그의 온몸은 탈진으로 떨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으며, 심지어 인내심 있게 들렸다.

“이제 배웠겠지?”

크롤리는 끄덕거리며, 눈을 감고 힘들게 목을 삼키더니 가까스로 목이 졸린 말소리를 냈다.

“ㄴ...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가브리엘은 잠깐 악마를 자세히 쳐다보더니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크롤리의 얼굴에 놓인 그의 손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그 후 대천사는 칼라의 다이얼로 손을 옮겨, 02 가 될 때까지 단계를 낮추었다. 아지라파엘은 놀란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자마자 크롤리는 급하게 헉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었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진정되어갔다.

가브리엘은 한참동안 그대로 앉은 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잊은 것이 기억난 듯, 크롤리는 놀라서 얼른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그는 숨도 안 쉬며 서둘러 속삭였고,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좀 낫군.” 가브리엘이 만족스러운 듯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크롤리의 머리를 거의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웃으며 아지라파엘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알겠지?”

“그런 것 같군요.”


아지라파엘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방금 목격한 일들에 몹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 가브리엘과 크롤리 모두 이상했다.

아지라파엘은 약간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이제, 더 할 일이 없다면...” 그는 용기 내어 말했다.

“더 할 일은 없네.” 가브리엘이 안심시켰다.

“그냥 – 저놈을 너무 부드럽게만 다루지 말게, 아지라파엘. 그는 지옥에 본보기가 되어야 하네, 그놈들이 우리에게...역겨울 때까지 사적으로 들이댄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야. 알아듣겠나?"

아지라파엘은 동의의 뜻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크롤리를 내려다보았다. 악마는 여전히 회복 중이었으며, 깊고 불안정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중이었다. 천사는 몸을 숙여 그를 일으켜주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냉정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일어서, 크롤리.”

크롤리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몇 분간 몸부림치며 애를 쓴 후에야 일어설 수 있었다. 아지라파엘은 둘 중 누구도 쳐다보지 않으며 손을 뻗어 크롤리의 팔꿈치 바로 윗부분을 잡았다. 너무 힘주면 안 돼, 아플 테니까... 너무 부드러워도 안 돼, 가브리엘이 알아챌 수 있어. 그리고 그를 데리고 출구 쪽으로 같이 나아갔다.


“잠깐, 아지라파엘.”


아지라파엘은 가브리엘의 말에 긴장했고, 몸을 돌리며 억지로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날개를 훤히 보이면서 런던을 걸어갈 수는 없지 않겠나.” 가브리엘이 지적했다.

“집으로 곧장 데려다주겠네.”


가브리엘은 한 손을 아지라파엘의 팔에 올려놓았고, 아지라파엘은 혐오감에 팔을 뿌리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대천사는 크롤리의 팔에도 다른 한 손을 올렸고, 크롤리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 둘은 어둡고 칙칙한 서점에 서 있었다... 드디어 감사하게도, 둘만 남은 것이다.


크롤리는 균형을 잃고 약간 비틀거리며 짧고 빠르게 헐떡거렸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을 제대로 알 수 없는지, 혼란과 불신 속에서 방을 둘러보았다.


“크롤리?” 아지라파엘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크롤리, 얘야...”


크롤리는 그 순간 아지라파엘을 쳐다보았고, 그의 크게 뜬 눈은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는 얼른 시선을 내리깔더니 한 팔로 얼굴을 막으며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미...미안, 미안해...” 크롤리가 속삭였고, 그의 말은 빠르고 공포에 질린 쉭쉭거림이었다.

아지라파엘은 그 후 벌어진 광경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크롤리가 먼지가 쌓인 나무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조용하지만 절박하게 흐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제발...부탁이야, 하지 말아줘...”










크롤리 구르는 게 왜 이리 좋을까요...전 변태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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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징으로 판 백업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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