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픽 번역 백업

Black & White

아지라파엘 x 크롤리

원작: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9349104

번역 허락 받았습니다! 내용은 무려 엑소시즘 당하는 크롤리ㅠㅠ


Black & White


아지라파엘이 크롤리에게 길가의 매력적이고 푹신한 순백의 눈더미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악마들은 추위에 강한 존재가 아니었다. 추위는 악마들의 뼛속까지 파고들며 그들을 약하게 만들었다. 추위에 노출되는 것은 그들을 죽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매우 약화시켜 저항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크롤리가 정신이 든 후, 방 안에 떠도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알아차리자마자 그는 이 빌어먹을 상황에 조금 화가 났다. 사지는 무거웠고 뒤통수에는 아직도 둔통이 느껴졌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악마이므로 생물학적으로 호흡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가슴을 짓눌러오는 알 수 없는 중압감으로 숨을 쉬어야만 할 것처럼 느껴졌다.

 

코를 문지르려고 손을 뻗으려고 했을 때서야 그는 자신이 불편한 의자에 앉혀진 채 사슬로 묶여있음을 알아챘다. 그제서야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다가올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벽은 회색이고 바닥은 콘크리트였다. 그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는 밝고, 불쾌하게 번쩍거리는 전구 하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전구의 빛은 너무나도 지옥을 생각나게 했다. 잠시, 그는 자신이 지옥으로 납치된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악마의 기운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누구 있어?”  텅 빈 공간에 소리쳤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뭘 기대한 걸까.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 거라곤 생각 안 해봤는데.” 그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리고 앞쪽으로 몸을 당겨 발쪽을 내려다봤다. 바닥에서 그의 둘레를 감싸며 그려진 원을 발견했으며, 두 발이 의자 다리에 묶인 것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악마니까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이 사실은 완벽하게 그려진 악마의 덫임을 알아보곤 그는 조금은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가됐건, 그를 인질로 잡은 자는 본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크롤리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추위로 인해 지속된 피로감이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갇혀서 추위에 떨며 오랫동안 깨어있자니, 차라리 그는 무슨 빌어먹을 일이라도 좀 일어났으면 싶을 정도였다.

 

또 한 시간이 지났고, 크롤리는 머리를 가슴 앞쪽으로 처박은 채 손은 의자 뒤에서 축 늘어뜨리고 졸고 있었다.

 

뒤에서 문이 쾅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악마는 단박에 놀라서 깨어났다.

“이런, 이런.” 크롤리가 알지 못하는 목소리가 즐거운 듯 말했다.

“앉기만 하면 자나보지, 안 그래?”

 

“네놈이 이 빈방에 날 내버려뒀잖아.”

크롤리가 천천히 대답했다.

“지루해 질 지경까지 묶여있었다고.”

 

누군가가 시야 내로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다듬어진 수염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악마에 대해서 전혀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크롤리는 그 남자가 악마의 덫에서 일정 거리 이상을 두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게다가 그 거리에서도 남자의 숄더백에 든 성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크롤리는 곧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평소에 하듯이, 자신은 실제로 악마가 아니라고 이 남자를 설득시키기에는 조금 많이 늦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남자의 선한 면을 이용해보자는 작은 시도로, 크롤리가 말을 꺼냈다.

“잘생긴 편이군, 안 그래?”


“날 유혹하려고 하지마라, 이 악마야!”

남자는 단어를 내뱉듯이 말했다.

“네놈 족속들을 알아. 네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도 알고. 네놈들이 얼마나 사악한 지도 알고 있다고.”

 

“악마한테서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네.” 크롤리의 대답이었다.

 

“네놈이 들어가 있는 남자를 구하려고 한다.”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그를 구한 다음 네놈은 온 곳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는-그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크롤리가 낄낄거렸다. “오, 장담하지. 그는 기다리는 가족이 없어.”

 

남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고 크롤리는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너-네놈이 그들을 죽였군, 맞지?”

그가 캐물었다.

“네놈은 이 남자 안에 들어가고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의 손으로 죽인거야. 그렇지? 안 그런가, 이 악마놈아?”

 

“난 아무에게도 들어가지 않았어.” 크롤리가 대답했다.

“이건 내 몸이야. 꽤 멋진 일이지, 그렇지 않나?”

 

“닥쳐! 거짓말하지 마.”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악마라는 족속들이 하는 짓이지. 거짓말 말이야.”

 

“우리는 가끔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정도인데.”

 

대답은 없었다. 대신, 남자는 크롤리를 마지막으로 쏘아보고는 –남자는 무서워하고 있었으나,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크롤리는 불의 열기처럼 남자에게서 퍼져 나오는 공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숄더백을 뒤져서 작고, 잎으로 우거진 초록색의 무언가를 꺼냈다.


“아, 엿 먹어.”

악마는 한숨을 쉬었다.

 

추위와 마찬가지로 세이지(sage)는 어느 정도만으로는 악마를 죽일 수 없었다. 크롤리는 추위보다 세이지를 더욱 싫어했다. 그것을 태워서 나오는 연기는 그의 목, 폐, 눈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충분한 양을 태우면 연기는 그를 질식시킬 수 있었다. 악마 하나를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다면, 몰래 세이지 차 한 잔을 마시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악마들을 잘 속아넘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모든 악마들은 세이지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

 

“이게 뭔지 알겠나?” 남자가 말했다.

“세이지.” 크롤리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세이지라고!”

“방금 말해줬는데.”

 

남자는 흰 우유빛의 양초와 라이터를 숄더백에서 꺼내들었다.

“네놈한테 힘을 써야하기를 원하진 않아. 하지만 그 몸을 빨리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악마.”

그는 양초에 불을 붙이고 크롤리를 위협하듯 세이지를 불 위로 치켜들었다.

“지금 떠난다면, 이 짓은 하지 않아. 놓아주겠다.”

 

“다시 말해줘? 이건-”

 

남자는 양초의 순수한 불꽃속에 세이지를 떨어뜨렸다. 크롤리는 앉은 채로 잎의 가장자리가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하며 말리는 것을 보았고, 창백한 회색 연기가 공중에서 서서히 떠도는 것을 보았다. 그의 납치범은 연기가 나는 풀을 악마의 덫 안으로 던져 넣었고, 그가 숨을 마시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 목 뒤가 불에 데는 듯하며, 폐 안쪽은 찔리는 것 같으며, 두 눈이 타오르는 느낌을.

 

크롤리가 기침했다. “이건-이건 내 몸이야.”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네 녀석의 좆같은 멍청한 머리가 좀 알아들으려면 몇 번을 얘기해야 하냐?”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다시 숙여서 세이지 하나를 더 꺼내, 촛불에 태운 후 악마의 덫에 다시 던져 넣었다.

“여전히 거짓말 하는군, 악마여. 그만하지 못해!” 그가 소리를 질렀다.

 

크롤리가 다시 기침을 했을 때, 목에서 피가 느껴졌다. 크롤리는 눈물에 젖고, 따끔거리는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놓아달라고 그 남자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 그는 크롤리의 말을 전혀 들으려하지도 않았다. (악마들이 거짓말을 실제로 많이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슬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온다고 한들, 악마의 덫에서 쉽게 나올 방법도 없었다. 운이 좋아서 아지라파엘이 무언가 잘못됨을 깨닫고 자신을 구하러 올지 말지 궁금해졌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어떤 일도 그런 식으로 풀리진 않는다.

 

남자는 크롤리가 본인의 숨에 질식하는 것을 지켜보며 서있었다. 악마는 그 인간이 무엇을 계획해놨든 시발, 빨리 서두르기만을 바랐다. 덫 안이 서서히 세이지의 연기로 가득 차오르자 크롤리는 산소를 거의 들이마실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간신히 말을 뱉어낼 수 있었다.
 

“지상의 모든 악마가 인간 안에 들어가진 않는다고, 멍청한 새끼야.”

 

“입 닥쳐, 악마놈아!”

 

그 점이 남자에겐 가장 중요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가방을 다시 더듬어서 물병 하나를 꺼냈는데, 신성한 기운이 코를 찔러왔으나 엄청나게 강하지는 않았다. 순수한 성수가 아니었다.

“희석된 거다.” 남자가 크롤리에게 알려줬다.

“몇 방울밖엔 없어. 네놈이 가진 몸을 심하게 다치게 하고싶진 않아. 그냥 네놈을 거기서 빼내고 싶을 뿐이다.”

 

크롤리는 코를 찡그렸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냐? 항의할 말은 없나?”

“시발 지금 항의를 하고 있잖아!” - Of course I fucking have protestssss!

 

크롤리는 자신을 묶고있는 사슬을 미친 듯이(그리고 조금은 절박하게) 당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라곤 들어 처먹질 않고, 그리고-그리고 난 이 망할 덫 안에 갇혀서-”

 

그가 대답하다 기침을 터뜨리자, 남자는 병 속에 두 손가락을 담그고 크롤리의 손이 있는 곳을 향해 악마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크롤리의 맨살에 몇 방울을 털어냈다. 피부가 녹고 끓어오르는 감각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뼈를 짓이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자마자 악마는 충격에 몸부림을 쳤다. 그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시며 의자 앞쪽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했다.

 

“시발 새끼야,” 그는 악문 이 사이로 숨을 내쉬었다.

“아프잖아! 좆같이 아프다고! 이-이 애송이 새끼가!”

 

납치범은 악마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나올 생각이 없나, 응? 그거 알아? 난 다른 종류의 성수도 더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이번 것만큼 희석된 것들도 아니야.”

 

“이걸 희석한 거라고 지껄여?” 크롤리가 내뱉었다. 이것에는 성수가 ‘몇 방울’보다 더 많은 양이 들어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평범한 물과 성수의 비율이 엉망이었다. 그는 사슬을 계속, 계속해서 당겼으나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악마의 덫이 이 자리에 계속 있는 한, 사슬과 의자는 가장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아지라파엘이 그의 앞에 와주기를 지금만큼 바란 적이 없었다.

 

상냥하고, 무해한 아지라파엘.

 

남자는 물병을 땅에 내려놓았고 크롤리는 그 행동이 이 모든 것의 끝을 나타내는 것이길 바라며 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그는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될 수 있음을 모를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성수의 혼합물이 남은 손의 화상에서 뜨거운 고통이 퍼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나아지고 있었다. 크롤리는 상처가 회복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둔하게 지속되는 고통에 점점 적응하고 있는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여기서 나가는 것에 쏠려있었다.

 

이 망할 덫으로부터.

 

“그래서 언제부터 이런 원을 이렇게 잘 그리게 된 거지?”

크롤리는 침묵 속에서 물었고, 숄더백에서 다른 것을 꺼내드는 남자의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정말 효과가 좋은데. 이게 효력이 있는지 내가 알아볼 필요조차 없을 것 같거든."


납치범은 몸을 돌리더니 크롤리의 오른쪽 어깨에 총탄을 쏘았다.

크롤리는 충격을 받은 채, 속이 뒤틀리고 토할 것 같음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저 남자가 그를 총으로 쐈다. 그를 쏘았다! 빌어먹을 총으로!

 

피가 셔츠를 적시고, 팔과 가슴으로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감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고통은 그가 전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총탄이었다. 신성하거나 축성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빨리 조치만 취한다면 혈액손실은 문제가 되지도 않을 거였다. 하지만 고통으로 인한 구토감이 그의 전신을 덮쳐 왔고 그는 토하기 위해 앞쪽으로 몸을 숙여야 했다.

 

구역질 뒤에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시자 세이지 연기가 그의 체내로 더욱 들어갔고, 젖은 기침을 멈추자 검은 피가 자신의 허벅지와 묶인 발 옆의 바닥에 온통 흩뿌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젠장. 핏자국으로 더러워졌다.

 

“그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네놈의 혈관을 끊어야 했어.”

남자는 말하면서 다시 물병을 집어들었다. 크롤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불안한 듯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고, 악마는 그 남자가 겁에 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

“네놈이 차지한 몸을 심각하게 해치고 싶지 않아. 중요한 동맥은 쏘지 않았어. 안 쐈다는 거 알고 있다고.”

“도대체 시발 뭐가-”

 

크롤리는 남자의 손에 든 물병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아, 젠장.”

 

납치범은 총탄에 의한 상처 바로 위에 물병을 들고 있었으나, 아직 기울이진 않고 있었다.

“이 방법으로도 네놈이 나오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군.”

“제발 다시 생각해봐.”
 

사슬을 절박하게 당기며, 크롤리가 쉰 목소리를 냈다. 악마가 인간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솔직히 매우 굴욕적이었다. 그는 죽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닥칠지 알고 있었고, 이 창문도 없는 방에 앉아서 비명을 지르는 것보단 더 나은 신세가 되고 싶었다.

 

“미안해.” 남자가 말했다. 그는 정말로 미안한 것 같았다.

 

물병이 비워졌다.

 

모든 곳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빌어먹게도 모든 곳이 아팠고 크롤리는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번개를 잡아채서 정맥에 억지로 밀어 넣은 것 같았다. 강렬하게, 액체로 된 불처럼 물 한 방울마다 매우 오랫동안 끔찍하게 타오르고, 들끓고, 다시 불타올랐다. 악마가 볼 수 있는 거라곤 격렬하고, 눈이 멀 것 같은 하얀 빛 뿐이었다.

 

그는 이 정도의 고통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결코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크롤리는 자신이 의자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발목과 손목 주위에 감긴 사슬을 아플 때까지, 엄청난 절박함을 담아 잡아당기고 있었으며, 고통은 그를 기어코 흐느끼게 만들었다.

 

이 지경이 되자, 세이지 연기는 그의 폐에 부드럽고, 상냥한 어루만짐과도 같았다. 구토감이 파도처럼 몰려왔고, 그는 옆으로 몸을 기울여 바닥에 속을 게웠다. 노란 담즙과 검은 피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올라오는 것들이 목을 불태웠다.

 

“미안해.” 목소리가 들렸으나, 욱신거리는 크롤리의 귀에는 겨우 중얼거리는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미안해. 해야만 하는 일이야. 할 수밖엔 없었어. 정말 미안해.”

 

목 뒤에서 또 다시 구토감이 밀려왔으나, 토해낼 것이라곤 이제 피 밖엔 남아있지 않았고 크롤리는 바닥을 향해 헛구역질을 했다.

“너...네놈...”

그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완전히 지쳤다. 고통스러웠다.

 

아지라파엘이 그리웠다.


**


크롤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 모든 곳이 욱신거렸다.

 

언제 기절했는지 기억은 안 났지만, 기절했다는 사실만큼은 기뻤다. 불타는 세이지가 아닌, 역한 탄 피부의 냄새와 악마의 피 냄새밖엔 나지 않았다. 그가 잘 아는 냄새였지만 딱히 즐겁지도 않았다. 특히 그 근원지가 자신의 몸일 때는 더욱 그랬다.

 

“시발,”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오, 젠장.”

 

그 방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자신의 체액 천지였다. 자신이 기절해있는 동안 입안에 고인 피를 뱉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악마의 덫에 틈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우연인지, 아니면 자신을 잡은 남자가 죄책감이든 뭐든 느끼고는 튀기 전에 한 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는 더 이상 이 망할 원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며 드디어 나가서 아지라파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집(home)에 갈 수 있다.

 

그는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었고, 덮쳐오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를 괴롭히던 소시오패쓰 엑소시스트 꿈나무가 더 이상 없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10분 동안 팔을 탈골시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쓴 후에야 손목을 사슬에서 겨우 빼낼 수 있었다. 그 후에 발목을 풀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그는 사슬을 끄르며 콘크리트 바닥에 흩뿌려진 검은 피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악마의 덫 일부를 지워낸 것이 그 개자식 같은 물병에서 나온 성수였음을 깨달은 것은 그가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였다. 말도 안되는 가능성이긴 했지만,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자 위안을 느꼈다. 자신이 방금 겪은 일을 보면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다.

 

아팠다 – 오, 사탄이시여,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 움직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크롤리는 어떻게든 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방은 그가 알아보기 힘든 어둡고, 더러운 복도로 곧바로 통해 있었다. 쓰레기통 옆에 쭈그려 앉은 노숙자 하나가 쓰레기를 뒤지던 것을 멈추고 크롤리를 올려다보더니 소리쳤다. “어이, 괜찮아?”

 

크롤리는 지금 당장 천사 아니면 아무랑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으나, 참아야 했다.

“A.Z Fell 의 서점은 어느 방향이지?”

 

**

 

크롤리가 잠깐씩 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아지라파엘은 악마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천사는 자신의 악마친구가 아마도 어딘가에서 소동을 일으키거나, 어쩌면 지옥으로 돌아가서 몇 시간동안 잔일이라거나...뭐든 밑에서 할 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서점이 닫기 정확히 30분 전, 크롤리가 서점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아지라파엘은 그제서야 걱정이 되었다. 크롤리는 방 가운데 바닥에 곧바로 죽은 듯이 쓰러졌다.

 

아지라파엘은 창문에 커튼을 치고 서점의 문을 걸어 잠근 후, 미동도 안하는 친구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악마는 심각할 정도로 창백했고, 그의 어두운 색의 찢어진 옷은 검은색의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혈액손실과 찢어진 상처는 악마들에게는 크게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보다 더 나은 치료능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지라파엘은 비참할 수준의 피와 타버린 피부의 냄새에서, 모를 수 없는 성수와 세이지 연기의 향을 알아챘고 향을 알아채자마자 천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 얘야.” 아지라파엘이 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거지...?”

 

크롤리는 거의 의식이 없었지만, 자신의 옆에 있던 아지라파엘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눈 하나를 살짝 뜰 수 있었다. “지라(Zira)...”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숨을 내뱉었다.

 

“너무 차갑구나.” 천사가 중얼거렸다.

누가 이런 짓을 했던 간에, 그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악마들이 추위에 약해진다는 것은 흔한 상식이 아니었다. 천사는 혀를 차고 온도조절기의 숫자를 높여 방을 즉시 뜨겁게 데웠다. 아지라파엘은 땀이 나고 불편해졌지만 지금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자신의 악마의 안전에만 쏠려 있었다.

 

천사는 악마의 창백한 이마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었다. 그는 손바닥을 마주 비벼서 자신의 양손에 천상의 치료능력을 모았다. 모든 창조물들 중 악마 하나에게 이 능력을 썼다는 사실로, 천국은 곧장 내려와서 자신을 괴롭혀댈 것이다. 상관없었다. 그는 크롤리의 목숨을 살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아지라파엘은 악마의 손 뒤에 있던 비교적 작고 넓게 퍼져있던 깊은 상처들과 어깨에 나 있던 큰 상처를 치료해냈다. 총알을 빼내는 것은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고, 크롤리가 의식을 잃자 정말이지 감사할 지경이었다.

 

크롤리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은 천사를 메스껍게 만들었다 – 이 짓을 한 자가 그 상처에 성수를 부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이었다. 생명체가 이토록 역겨운 짓을 할 수 있다니. 크롤리를 몰아붙였던 스트레스와 고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천사는 그답지 않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사가 닦아주고 치료해준 상처에는, 인간들의 응급상황을 대비해 보관해둔 붕대가 크고 네모나게 감겨있었다. 악마의 피부는 더 이상 매우 창백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악마가 필요한 것은 많은 물과 충분한 휴식이었다.

 

아지라파엘이 자신의 악마를 서점 위에 있는 집 안의 침대로 데려가 눕히는데 10분이 걸렸다. 크롤리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고, 그의 가슴은 편안한 잠으로 평온하게 오르내렸다. 지옥과 천상의 존재들은 엄밀히 말해 생존을 위해 잘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수면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효과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이었다. 아지라파엘은 지금 가장 잠이 필요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크롤리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누가 이 짓을 했는지 몹시 알고 싶었지만, 그는 크롤리가 일어나자마자 캐물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의 상처를 판단하건대, 쉽게 입을 만한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이후로도 자신의 악마는 한동안 계속 고통스러울 것이 틀림없었다.

 

“오, 크롤리.”

아지라파엘은 물 한잔을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침대 위 친구 옆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니...?”

 

**

 

크롤리가 깨어났다. 그는 차가운 방에서, 마찬가지로 차가운 사슬에 묶인 채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현실에서는, 크롤리는 기분 좋은 따뜻함을 느끼며 깨어났고 전보다 고통이 훨씬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몸은 매우 익숙했고 너무나 편안했기에, 크롤리는 그 자리에서 흐느끼고 싶어졌다. 이곳에는, 정말 그만의 천사 같은 아지라파엘이 있었다 – 눈부시고, 완벽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천사가. 천사는 자신의 옆에서 졸고 있었다. 그의 눈썹은 걱정과 불안의 흔적으로 찌푸려져 있었으며, 부드럽고 텁수룩한 순백의 머리카락이 자라있었다.

 

“고마워. 감사해. 고마워요.”

 

크롤리는 자고있는 천사에게 속삭였다.

 

말소리가 천사를 깨웠나보다. 그가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눈을 다시 감자마자 자신의 배 위에 놓여있던 팔이 움직이더니 아지라파엘이 졸린 듯이 머리를 들어 악마를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크롤리?” 천사가 중얼거렸다. “정신이 들어?”

 

“...아니.”

 

아지라파엘이 부드럽게 소리내 웃었다. “몸은 좀 괜찮고?”

 

이 질문에 크롤리는 망설였다. 알 수가...알 수가 없었다.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 방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모든 왕국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천사 곁에서 편안한 따뜻함 속에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속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그를 조금이지만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긁을 수 없는 가려움 같았다.

 

“괜찮아.” 천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무 말 안 해도 돼. 그냥 네가 괜찮은지 알고 싶었을 뿐이란다, 얘야.”

 

크롤리는 머리를 천사 쪽으로 돌렸고, 아지라파엘은 걱정을 감춘 표정을 한 채 아름다운 바다색이 감도는 회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동안 그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 후 크롤리는 천사의 이마에 부드럽고, 안심되는 키스를 해줬다. 이 아름다운 천사 자식이 자신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드는지.


“너랑 있으면 난 언제나 괜찮아.”



+)

크롤리 구르는거 정말 좋은데 이 엑소시스트 꿈나무는 왤케 짜증나죠ㅠㅠ 말을 안들어ㅠㅠ

구르는 것도 좋지만 아지한테 힐링받는 것도 참 좋지않나요 우리 크롤리 힐링해주는거 아지밖에 없다ㅠㅠ 크롤리 몽롱한 상태에서 고맙다고 연신 중얼거리는 부분에서 심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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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징으로 판 백업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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